글 수 36
2013.03.04 14:41:54 (*.70.193.214)
2684
미국은 어떻게 세계정보산업을 독점하는가?
- 이문근 (전북대)
선점 집단의 독선
이제까지 컴퓨터 및 정보 통신 분야에서 미국방부와 관련 기관들이 선도적인 역할을 했음을 확인하였다. 그리고 인터넷의 가장 중요한 골격이라고 할 수 있는 주소 체계도 미국 방위정보시스템기관의 통신정보센터, 즉 DISA NIC에서 1993년까지 관리했음을 확인하였다. 그리고 1993년 이후 이 역할이 미국과학재단, 즉 NSF로 이전되었으며, NSF는 AT&T, General Atomics, Network Solutions 회사들과 이 업무에 대한 계약을 맺어 기술적 관리를 담당하게 했다. 현재 이 계약은 만료된 상태이지만, 인터넷 도메인 등록 업무는 아직도 Network Solutions 회사가 담당하고 있다. 이렇게 등록 관리되는 도메인 이름은 두 가지 측면에서 구분할 수 있다.
하나는 미국을 제외한 타 국가는 도메인 이름에 국가 코드가 들어간다. 예를 들면 한국은 “kr" (Korea), 일본은 “jp" (Japan)로 표기된다. 그리고 도메인 이름은 이 이름으로 대표되는 기관이나 단체의 성격에 따라 코드로 분류한다. 예를 들면 “ac"는 대학교육기관(academy), “re"는 연구기관(research institutes) 등이다. 그래서 “moak.chonbuk.ac.kr"을 한국(“kr")의 대학교육기관(“ac")중 전북대학교(“chonbuk")에 있는 “모악”(“moak")이라는 컴퓨터를 지칭하는 도메인 이름이다
그런데 미국의 도메인 이름은 국가코드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당연히 초기 인터넷이 미국 내에서만 사용되었기 때문에 국가코드가 필요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는 몰라도 도메인 분류코드는 국가코드 없이 바로 시작하며, 다른 국가와는 달리 기업을 위한 “com", 교육기관(educational institutes)을 위한 “edu", 정부(government)를 위한 “gov", 비영리단체(nonprofit organization)를 위한 “org" 등의 코드로 분류하였다. 예를 들면 “ibm.com"은 IBM 기업을 지칭하는 도메인 이름이다.
여기에서 미국이라는 국가코드가 없기 때문에 발생되는 결과중의 하나는 미국을 세계의 대표로 인식하게 만드는 것이다. 초국가적인 미국의 대표성. IBM은 이미 미국의 IBM이 아닌 세계의 IBM이 되어 있는 것이다. 현재 우리 시대는 사회 모든 분야에서 컴퓨터와 통신 체계로 인하여 많은 변화를 겪고 있다. 이러한 변화에서 인터넷의 역할을 빼 놓을 수가 없다.
그러나 이미 도메인 이름에서 형성된 미국의 초국가적 인터넷 정복. 이는 분명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모든 활동에 막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전 세계에 막대한 유선·무선 통신망을 구축하고, 또 이를 기반으로 한 인터넷 도메인을 선점하여 초국가적 대표성을 부여받고, 인터넷에서 유통되는 대부분의 정보를 장악하는 미국의 정보 독점력. 이는 분명 이 분야에서 반세기를 투자한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결과, 즉 이익을 지속적으로 보장받고자 하는 미국의 의도가 이제 너무 노골적으로 표출되고 있다.
다양성을 부정하는 산업 구조
생물학적인 측면에서 유전적 다양성이 한 종의 진화정도를 특정 환경에서 직접적으로 결정하는지에 대해서는 복잡하고 난해한 지식 없이도 쉽게 알 수 있다. 예를 들면 닭을 키우는 농장에 전염병이 돌 경우 똑같은 환경에서 똑같은 조건으로 성장했을 경우 결과는 비슷하게 나온다는 것을 통해서 알 수 있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서로 다른 조건으로 성장했다면 전염병을 대하는 결과는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결과 다음 세대로의 진화과정에서 면역이 생기거나 아니면 강성을 가진 유전자가 다음 세대로 유전되어 이후 비슷한 전염병을 효과적으로 이겨낼 수 있다는 것이다. 아마도 인간이 살고 있는 사회에서의 여러 현상들도 생물학적 측면의 다양한 인과관계를 가질지도 모른다.
현재 흔히 PC(personal computer)라고 불리는 개인용 컴퓨터의 운영체제는 대부분 MS 윈도우이다. 이는 전세계 PC 운영체제의 약 80% 이상을 점유하고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2000년 기준). 그 결과 MS사는 MS 윈도우에 대한 정보와 기술 때문에 2000년 190억 달러(약 22조 8천억원, 1200원/1불 기준)의 현금 자산을 보유한, 단 한푼의 빚도 없는 세계 최우량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으며, 이 회사의 주인인 빌 게이츠는 세계 제일의 갑부가 되었다.
이렇게 한 개인과 회사에게는 정보와 기술이 부를 축적하고 명예와 사회적 위치를 확보하는 수단이 되었지만, 한편으로는 이를 독점함으로써 많은 문제점이 발생되고 있다. 의도적인 경쟁 회사의 몰락, 정보의 독점과 기술의 다양한 발전 기회의 상실, 독점 제품과 가격에 대한 소비자의 무조건 선택 등. 이러한 문제점들은 결국 전체 사회의 발전을 저해하는 장애요소가 된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1999년 12월 22일 미국 연방-주정부측에서 1999년 MS의 독점 혐의를 인정하고 2000년에는 MS사를 분할하라는 독점 예비판정을 내렸다. 그러나 부시 행정부가 들어서자 상황은 급변하였다. MS사에서 제시한 타협안을 놓고, 2001년 담당판사가 콜린 콜라-코텔리 연방지법 판사로 바뀌더니, 법무부가 MS 분할 계획을 철회하고 MS사와 화해하기로 결정하여, 2002년 11월 타협안이 MS사의 주장대로 타결되었다.1)
이 사건의 결과가 갖는 의미는 무엇인가? 우선 이 사건의 진의를 파악하려면 1984년 AT&T(미국전신전화사)의 통신 분야에서의 독점권 박탈의 결과를 이해해야 한다. AT&T는 미국의 절대적인 통신회사였다. AT&T는 미국 전역에 22개의 지방 자회사를 가지고 있었고 장거리 회선과 교환기를 독점하고 있었다. 이 외에도 전화기기를 생산하는 Western Electronic 자회사와 세계 최고의 통신연구소인 Bell 연구소를 소유하고 있었다. 그러나 한 특정 회사가 한 분야에서 특정 비율 이상 시장을 점유하여, 소지자 가격을 고가로 책정하고 소지자의 선택권을 제한하는 상황을 해결하기 위하여 AT&T에 대한 독점 판결을 내리게 되었다.
그 결과 1984년 이후 AT&T의 22개의 지방 자회사는 독립적인 7개의 지역통신 회사로 분할 및 통합되었으며, 장거리 회선과 교환기는 계속 유지할 수 있었지만 타 통신회사들도 장거리전화(국제전화 포함)사업에 참여할 수 있도록 허락했다. 전화기기는 계속 생산할 수 있었지만 Bell 연구소는 AT&T 연구소와 7개의 지역통신 회사를 위한 Bellcore(현재는 Telcordia)로 균등하게 분할되었다. 이러한 손실의 대가로 주어진 것은 컴퓨터와 관련기기를 생산할 수 있는 것이었다. 이 AT&T에 대한 독점권 박탈의 결과 GTE Sprint, MCI 등의 장거리전화회사가 생겨났고, 결국 통신의 수단과 매체를 전유하다시피 했던 AT&T의 시대는 막을 내리게 되었다. 사람들은 당시 정부의 이러한 판결의 중요성을 즉각적으로 인식하지 못했지만 16년이 지난 지금 컴퓨터와 통신망을 기반으로 정보화 시대를 주도해 나가는 미국의 위치와 환경을 고려할 때, 1984년의 독점권 박탈은 이러한 결과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미국 전역과 전 세계를 거미줄처럼 연결하는 통신망, 수많은 인공위성들, 다양한 회사와 다양한 서비스들. 그리고 수많은 정보들. 이러한 것은 한낱 독점을 통해서는 결코 얻어질 수 없는 값진 것들이었다.
MS사에 대한 미국 연방-주정부측의 독점 예비판정, 동시에 진행되었던 MS사에 유리한 화해 및 타협안의 과정은 분명 미국의 현정부가 MS사의 이익을 대변한 결과임이 틀림없다. 비록 전세계적인 정보 산업을 주도하는 미국일지라도 대자본가의 논리에 의해 자유로울 수 없음을 분명히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 결과 다양한 운영체제의 필요성을 거부하고, 자유로운 상품의 경쟁과 소비자의 제품에 대한 선택 권리를 박탈한다는 것이다. 결국 동일한 환경과 조건에서 작업할 경우 발생될 수 있는 결과물 또한 동일하여 그에 대항할 수 있는 면역체계가 한동안은 결코 성립될 수 없다는 문제점이 발생하는 것이다. 아마도 대표적인 예가 바이러스에 의해 일시에 무너지는 보안체계를 들 수 있다.
2002년 한국의 차세대 전투기 선정과정에서 보여준 정부의 입장은 많은 국민을 실망 시켰다. 미국 보잉사 F15가 한국의 차기 전투기 기종으로 선정되는 원칙과 과정이 객관적이거나 투명하지 못했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였던 것 같다. 정보 분야는 어떨까?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최근 몇 년 사이 IMT-2000이란 단어를 자주 들었을 것이다. 이는 ‘International Mobile Telecommunication System'의 준말이다. 여기에서 2000은 통신 서비스가 2000MHz 주파수 대역에서 제공된다는 것과 2003년부터 서비스가 시작됨을 의미한다. IMT-2000은 아날로그방식인 제 1세대(1G: First Generation), 디지털방식인 제 2세대(2G), 무선인터넷방식인 제 2.5세대(2.5G)에 이어 제 3세대(3G) 이동통신시스템이라 부른다. IMT-2000의 가장 큰 특징은 음성, 영상, 데이터 등을 포함한 멀티미디어 정보를 초당 2Mbit(약 12만5,000자)의 속도로 송수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멀티미디어용 이동전화이다. 이러한 멀티미디어 통신서비스를 받는 경우 전세계 어디서나 자신의 고유전화번호로 이용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꿈의 차세대 이동통신이 IMT-2000을 위한 첫 단계인 표준화 단계에서부터 미국과 유럽이 서로 다른 표준을 고집하면서 실현되지 않고 있다.
미국과 유럽은 어떤 표준안을 고집하고 있으며 그 이유는 무엇인가. 미국의 퀄컴, 모토로라, 루슨트 등 CDMA(코드분할다중접속) 진영은 CDMA 기술의 연장선에 있는 CDMA2000(동기방식)을 채택하도록 요구하고 있고, 스웨덴의 에릭슨, 핀란드의 노키아, 독일의 지멘스, 프랑스의 알카텔 등 유럽 진영은 GSM(유럽식 이동전화방식)의 연장선에 있는 W-CDMA(비동기방식) 기술을 고집하고 있다. 이렇게 미국과 유럽이 서로 다른 IMT-2000을 주장하는 이유는 물론 단순하게도 경제논리이다. 왜냐하면 자기 진영의 기술이 IMT-2000 표준으로 채택될 경우 막대한 로열티 수입을 거둬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IMT-2000의 사업 초기인 2003년에 33억 달러, 2005년에 554억 달러로 급성장할 것으로 전망되는 황금시장에서 거두어들일 천문학적인 로열티와 선점기술제품 판매를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경제논리에 정치논리가 개입되고 있는 인상을 주고 있다. 왜냐하면 지난해 말 현재 동기식 이동전화 가입자(미국식)는 5010만명, 비동기식 가입자(유럽식)는 2억 5400만명이며, 두 진영만 놓고 단순히 비교해 보면 동기식 가입자는 16.5%에 불과하고 나머지 83.5%는 비동기식이기 때문에, 비동기식 채택사업자간 국제 로밍이 훨씬 효과가 클 수밖에 없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최근 국제통신연합(ITU)은 동기, 비동기 진영의 이해를 조율하지 못하고 두 방식을 모두 인정하는 복수표준안을 내놓았다. 겉으로는 긍정적인 해결책으로도 보이지만 16.5%의 미국안과 83.5%의 유럽안에 대한 단일 통일안이 없다는 것은 이상하기만 하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에서부터이다. 이런 복수표준안 때문에 발생되는 각 국가들의 부담은 어떨까? 오랜 세월동안 다져온 여러 국가의 각 업체의 기술요건과 장비들을 호환시키기 위한 대안도 아직 마련되지 않고 있기 때문에 각 업체들로서는 중복투자의 부담이 만만치 않다. 이는 범세계적 서비스라는 IMT-2000의 기본 취지에 어긋날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와 같은 로열티를 지불해야하는 국가에서는 양 진영에 로열티를 이중으로 지불해야 할 뿐만 아니라, 양 방식에 따른 기술과 제품을 같이 사용해야 하는 이중 부담을 져야한다.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꼴이다. 그런데 이런 일들이 전자상거래를 위한 표준안에서도 미국과 유럽의 표준안을 놓고 동일하게 발생되고 있다. 미국과 유럽의 양 진영의 경제와 정치 논리에 희생당하는 제 2, 제 3세계의 현실을 생각하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1) 반면에 MS를 기소했던 9개 주와 워싱턴 DC는 화해 및 타협안을 거부하여 반독점 소송이 계속 진행되고 있다.
(2003/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