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글픈 추억: 'IT협동연구 센터설립/지원사업'탈락을 경험하며

 

글쓴이 이문근(전북대교수 전자정보공학)

철학과 정책을 비웃는 경제 논리

2004년 7월 2일, 서울 올림픽파크텔 4층, 낮 12시. 오전 11시10분에 시작하기로 되어있던 “IT협동연구센터설립?지원사업”(이하 협동센터) 제3차운영위원심사(이하 3차심사)가 1시간 가까이 연기되고 있었다. 그리고 1층 로비 커피숍에는 전북대총장, 전주시장, 전주 국회의원이 심사에 참석하기 위하여 한시간 이상 대기 하고 있었다.

이 사업은 KTF, SK, LG 통신 등의 통신사업자연합회가 약 1000억원의 기금(통신법에 의하여 이동통신사용자 통화료의 일부를 적립한 것임)으로 전국을 수도권을 제외한 4권역(대전?충북?충남/광주?전북?전남?제주/부산?울산?경남/강원?대구?경북)으로 나누고 각 권역별로 “산·학·연 협동연구를 통한 미래 IT(IT: Information Technology) 산업 핵심기술 개발역량 강화” 및 “지역 특화분야를 중점 지원하여 지역별 비교 우위분야 육성”하기 위하여, 9대 신성장 동력(IT기반 서비스로봇, 임베디드 소프트웨어, 디지털 콘텐츠, 텔레메틱스, 디지털TV?방송, 홈네트워크, 차세대 이동통신, IT-SoC, 차세대 PC), BcN, IT융합(IT+BT/NT), 부품?소재 부분의 “IT협동연구센터”를 설립 및 지원하기 위한 사업이었다.

이 연구센터가 설립될 경우 전라북도에 5년 동안 약 250억여원(10%이상의 대응 투자 별도)의 IT 관련 투자가 이루어지니 가뭄에 찌든 전북 IT 산업에 단비와 같은 사업이 아닐 수 없었다. 이 사업에 전라북도는 전북대학교를 주관기관으로, 군산대학교, 우석대학교, 원광대학교, 전주대학교, 한일장신대학교, 호원대학교 및 광주광역시의 광주대학교를 참여대학으로, 도내의 14개 IT 참여산업체로, (재)전라북도자동차부품산업혁신연구소, 전주모바일연구소, 전주정보영상진흥원을 참여연구소로, 그리고 제주도를 분소로 하는 “IT협동연구센터”를 기반으로 하는 텔레메틱스 사업을 제안하였다.

이 사업에 대한 심사 과정에서 전라북도는 제1차 전공심사에 1위로 통과하였고, 제2차 실사에서 전라남도 동신대학교의 디지털 컨텐츠(Digital Contents) 분야와 경합을 거쳐, 최종 제3차 운영위원심사를 남겨놓고 있었다.

심사는 각본에 따라?

12시가 넘어 전북대총장, 전주시장, 국회의원이 4층으로 올라오고 12시 반경이 되어 심사가 시작되었다. 심사는 기관장들과 국회의원의 전라북도/전주시/전북지역대학의 텔레메틱스를 기반으로 하는 IT산업에 대한 육성 및 발전 의지를 2분 이내에 피력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전주(또는 국회)에서 올림픽파크텔까지, 그리고 2~3시간의 대기과정을 거쳐 겨우 1~2분의 주장을 펼친 기관장들과 의원이 심사장에 빠져 나가고 이제 본 심사가 시작되었다.

심사는 발표/질의/답변 식으로 이루어졌지만, 줄곧 야릇한 웃음을 지으며 심사를 주관하는 심사위원장과 그 맥락에 맞춰 적절한 질의를 하는 심사위원, 그리고 우리측 답변에 준비된 택클을 거는 심사위원장과 몇 핵심 심사위원들. 그 분위기에 젖어 의자에 등을 뒤로 반쯤 재치고, 비웃는 듯 비아냥 하 듯 질문과 반문을 던지는 다수의 심사위원들. 심사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어떤 짜여진 각본에 의해 연출되어지는 작품만 같았다.

이 심사위원들은 누구일까? 이들은 ETRI(Electronics & Telecommunication Research Center)의 PM(Project Manager), 관련 분야의 대학교수, 그리고 통신사업자연합회 소속 통신사의 부장급 간부라고 했다.

심사를 마치고 나오면서 불쾌한 감을 지울 수가 없을 정도로 찜찜했고, 심지어 “과연 이걸 정말 심사라고 말할 수 있는가” 라는 회의가 들 정도였다. 과연 “산·학·연 협동연구를 통한 미래 IT산업 핵심기술 개발역량 강화” 및 “지역 특화분야를 중점지원하여 지역별 비교 우위분야 육성”한다는 명목으로 국민의 혈세와 같은 1000억의 기금을 투자하면서 겨우 이런 정도의 전문성을 가지고 평가와 심사를 하다니 도저히 믿겨지지가 않았다. 그리고 이런 전문가들의 이런 평가를 받기 위하여 수십 명의 교수와 전문가들이 거의 자비(自費)로 자신의 시간과 정렬을 투자하여 여기까지 왔다니, …. 쓴 웃음만 나왔다.

정치적 거래만 존재하나?

아니나 다를까. 그날 저녁 전라북도가 탈락했다는 연락을 받았다고 소식을 들었다. 그리고 이미 제3차 심사가 있기 전날 사전 평가 및 심사가 있었다는 소식도 들었다. 더욱 믿겨지지가 않았다. 그럼 결과만 통보하면 되지 도대체 심사는 왜 했는지 의심스러웠다.

그리고 객관적인 원칙과 투명한 평가 기준이 공개 되지 않은 채 진행된 3차심사 때문에 이런 야단법석을 떨게 만드는 통신사업자연합회의 막강한 금권력과 상대적으로 빈약한 경제구조와 경제력 때문에 허덕이며 전라북도/전주시 지자체와 도내 대학 및 관련기관 및 산업체들 사이에 존재하는 이 일방적인 관계 때문에 허탈감과 비참함이 느껴졌다.

언제부터 정부 또는 정부 산하관련 부서가 아닌 단체에서, 즉 통신사업자연합회같은 단체에서 국민의 혈세와 같이 이동통신으로 적립된 사용자 통신료의 일부를 가지고 국가경쟁력강화를 위한 IT산업 육성 방안의 IT협동연구센터를 설립 및 지원하게 할 수 있게 되었는가.

특히 심사당일 심사장을 나서는 김완주 전주 시장의 “텔레메틱스가 떨어지면 나노가 될거야”라는 멘트를 전해들을 때, 이미 심사는 전문성을 떠나 이미 전라남도/광주광역시와 전라북도의 정치적 구도 하에 결정된 사안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왜냐하면 거의 비슷한 시기에 진행되어온 산자부 지원 사업 중 나노, 즉 NT(Nano Technology) 사업은 이 텔레메틱스 사업보다 큰 규모의 사업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결과는 나노 사업조차 전라남북도가 공동으로 컨소시움을 구성하기로 산자부에서 타협을 보았다고 전해 들었다.

또 쓴 웃음이 나왔다. 이제 부서별 사업의 목적과 이 과정에서의 심사나 평가의 실체는 사라지고, 최종 지역간 정치적인 거래만 존재하는 것은 아닌지 의문스러웠다.

이 글에서는 3차심사에서 있었던 최종 심사에서 있었던 핵심 문제점을 정리해보고자 한다.

심사하는 사업의 본질도 이해 못하는 심사위원들

제3차 심사에서 심사 위원들의 질의 내용 중 핵심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전북대학교 “차세대 LBS 센터” ITRC 정보통신부 지정 연구소. (IT Research Center)의 과제와의 중복성, ETRI에서 진행 중인 텔레메틱스사업(이하 에트리 텔레메틱스)과의 중복성. 이에 대한 논지를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전북대학교 “차세대 LBS 센터” (이하 LBS 센터) ITRC의 과제와의 중복성 부분에서 심사위원들은 협동센터와 LBS 센터사이에 연구 내용과 인력이 중복된다고 주장했었다. 이런 주장은 심사위원들의 자질을 의심케 하는 내용이었다. 왜냐하면 LBS 센터는 ITRC로서 선도적인 이론을 도출하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있고, 협동센터는 지역의 핵심산업 중 텔레메틱스 산업에 필수적인 핵심 기술을 개발하고 이를 기반으로 응용 서비스를 개발하여 지역 IT 산업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즉 심사위원들은 본인이 심사하고 있는 사업의 목적조차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말이다. 또한 이런 규모의 사업을 평가하기 위한 국가IT산업의 핵심브레인이라고 불리우는 사람들이 ITRC 정도를 이해하지 못하고 이를 협동센터와 구분하지 못한다면 우리 IT산업의 미래는 그리 밝은 편은 아니리라. 이런 부분이 두 센터들 간의 목적에만 해당되겠는가. 사업의 규모, 전략, 정책 및 메카니즘, 내용, 인적 구성 및 역할, 일정, 산/학/연/관의 연계성, 지역IT산업 역동성, 등등을 따지자면 더 말할 것도 없다.

둘째, 에트리 텔레메틱스와의 중복성 부분에서 심사위원들은 협동센터의 텔레메틱스와 에트리 텔레메틱스 사업이 동일하다고 주장하였다. 한 심사위원은 제안서를 치켜세우며 내용까지 똑 같다고 주장하였다. 이 또한 심사위원들의 자질을 의심케 하는 내용이었다. 왜냐하면 에트리 텔레메틱스 연구는 아직 초보적인 단계이며 주로 표준화와 규격화에 몰두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었다. 그리고 이 협동센터의 텔레메틱스는 실제 응용서비스에 필요한 (사용자에게 직접적인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실질적인 수준) 요소 기술을 개발하고 이를 기반으로 실재 기존의 이동통신 인프라를 기반으로 응용서비스를 개발하여 제공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 정도의 두 텔레메틱스 연구와 사업 사이의 목적과 성격을 구분하지 못한다면 당연 심사위원의 자격이 없는 것이지 않겠는가. 그리고 이런 부분은 제안서에 충분히 그리고 자세히 기술 및 요약되어 있었다. 그럼 심사위원들은 이런 내용조차 읽어 보지 않았다는 것이 아닌가. 제안서의 내용도 읽어보지 않고 심사를 하는 심사위원들. 정말 대단한 심사위원들 아닐 수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것은 “텔레메텍스”는 “9대 신성장 동력”으로 선정되었고, 당연히 본 사업 수행하기 위한 중요핵심의 한 분야였다. 그런데 이런 “텔레메텍스” 분야를 지원한 그 자체가 에트리 텔레메틱스와 상치가 되는 것이라면 우리나라의 텔레메틱스는 오직 에트리 텔레메틱스만이 존재할 수 있다는 말인가. 그럼 그런 텔레메틱스 분야를 사업의 핵심 사업 중 9대 신성장 동력의 하나로 선정해서 제안서를 제출하게 했다는 그 자체가 모순이 아닌가.

더 나아가 연구 내용까지 에트리 틸레메틱스와 동일하다고 주장하는 심사위원을 보면, 심사위원 자질 이전의 사회인으로서의 도덕성과 윤리성마저 저버린 결과론적 인간임에 분명하였다. 왜냐하면 이 제안서를 쓰기 위하여 수십명의 교수와 전문가 및 기관 당담자들이 수당없이 자발적으로 자비를 들이며 두 달 가까이 토론과 회의를 거쳐 만들어 낸 공동의 작품이기 때문이었다. 수십 명이 새벽까지 밤을 새워가며 작업한 날도 하루 이틀이 아니다. 그런데 이런 땀과 정성과 정렬이 담긴 제안서를 에트리 텔레메틱스의 것과 똑 같다고 주장하는 심사위원을 보면서 과연 어떤 근거로 그런 주장을 할 수 있는지 그 심사위원의 배짱과 무식함에 단지 놀라울 뿐이었다. 아니 그 이전에 그렇게 주장할 수 있는 그 심사위원의 야만적인 인격과 성격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것이 심사의 핵심 내용이었다. 나머지 내용은 이를 기반으로 한 흠짐 잡기와 트집 잡기의 연속이었다.

미국의 철저한 심사

프로그램 언어 중 Ada라는 언어가 있다. 이 언어는 미국방부에서 세계의 석학들을 모아 70년 초반부터 80년 초반까지 10여년을 걸쳐 개발한 언어이며, 프로그래밍 언어 중 가장 공을 들여 개발한 언어라고 알려져 있다. 그 이유는 이 언어를 미 국방시스템의 기본언어로 사용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이 언어를 개발 과정에서 개발단계를 Ⅰ, Ⅱ, Ⅲ의 3단계로 나누고, 전문가들로 이루어진 경쟁업체를 경쟁시켜 최고의 품질을 얻기 위하여 각 단계별로 두 배수의 업체를 선정했다고 한다. 즉 1977년까지 요구 분석 및 사항이 정의되고 난 다음, 언어개발을 위한 공개 입찰을 했다.

여기에서 17개의 업체들이 제안서를 제출했고, Ⅰ단계에서 이들 중에 4개 업체인 CII Honeywell Bull, Ben Brosgol of Intermetrics, John Goodenough ofSoftTech, Jay Spitzen of SRI International을 선정하였다. 투명하고 공정한 경쟁을 위하여 이 업체들의 개발언어를 Green, Red, Blue, Yellow로 명칭하여 제 2단계를 위한 개발을 시작하였다. 1978년 Ⅱ단계에서는 Red와 Green이 선정되었다. 그리고 1979년 Ⅲ단계에서 최종 Green(CII Honeywell Bull)이 선정되었다. 그리고 1983년 공식적으로 미국국방표준 1815A로 등록되었다.

하나의 언어를 개발하기 위한 미국방부의 이렇게 철저한 체계와 노력에 부러움보다는 참담함을 느끼는 이유는 무엇인가? 얼마 전 현대 고 정주영회장의 “빈대론”이라는 이야기를 신문에서 읽은 적이 있다. 일제점령시기 1930년대 공사판에서 일할 때 숙소에서 빈대를 피하기 위해 온갖 방법을 사용해도 빈대는 그를 극복하기 위한 다른 기막힌 방법을 동원해 쳐들어온다는 빈대론, 급기야 사람의 피를 빨아먹기 위하여 천정에서까지 침대 위로 떨어진다는 빈대론. 무엇인가를 성취하기 위해서는 철두철미하게 준비하고 완벽하게 실천해야한다는 이야기다.

최고의 품질을 가진 하나의 언어를 개발하기 위한 미국방부의 이런 철저한 계획과 실천, 그것도 경쟁 체제 하에서. 우리는 어떤가. 텔레메틱스라는 분야에서 서로 다른 영역, 즉 에트리 텔레메틱스의 표준화/규격화와 협동센터의 요소기술/응용서비스 개발이 엄연히 다름에도 에트리 텔레메틱스 때문에 협동센터의 텔레메틱스가 “심사”의 대상이 되어야하는 현실을 생각하면, 이는 참담함이, 비참함이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잘못된 국가의 지원방식

경쟁력이란 적군이든 아군이든 상대와의 경쟁적 관계에서 요구되는 조건이다. 협력은 또 다른 차원이 조건이다. 국가경쟁력강화와 국가균형발전이라는 명목으로 진행되고 있는 국민의 혈세를 공적자금이라는 명분으로 어마어마하게 퍼붓는 사업들. 기업이든, 지자체든, 대학이든, 연구소든 경쟁력을 강화시키지 않는 구조 속에서는 이러한 사업들은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 사업은 하나의 최고 대상에게만 지원하는 원칙을 가져서는 안된다. 그들은 더 많은 지원금과 위상 때문에 살만 벅벅 찐 나태한 그리고 기동성과 역동성이 떨어진 나태한 괴물이 되기 쉽다.

사업은 제2, 제3의 최고를 꿈꾸는 대상들을 키우고 제1, 제2, 제3이 서로 치열하게 경쟁하는 혹독한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만 이런 기업/대학/연구소들이 세계의 다른 굴지의 기업/대학/연구소들과 경쟁하여 살아남을 수 있다. 이런 것이 “국가경쟁력”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그리고 이런 환경이 전국적으로 확산되는 것이 “국가균형발전”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우리는 할 수 있다

참담함, 비참함, …. 여기에는 분명 전라북도라는 지역감정이 전재되고 있다. 하지만 이번 사업을 추진하면서 이런 감정을 위로하는 목소리들이 있었다. 그 것은 사람들의 목소리였다. 비록 실패했지만, 협동센터를 제안하면서 모인 우리 지역의 전문가들(대학교수들, 연구소 연구원들, 산업체 CEO 및 일꾼들, 지자체 책임자들, 대학원 학생 및 연구원들)의 목소리가 하나가 되어 이런 협동센터의 필요성과 역할을 이끌어 내었고, 그들이 하나가 되었을 때, 얼마나 신바람이 나게 혼연일체가 되어 주체적이며 역동적으로 일을 했는지 그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이 다 알고 있다.

즉 우리는 서로의 존재를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는 전라북도의 IT산업과 나아가 진정한 국가경쟁력강화를 위한 협동센터보다 더 근본적이고 혁신적인 “살아있는 센터”를 만들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이는 우리 전북의 희망이고 미래가 될 것이다.

(2004/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