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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3.04 14:43:22 (*.70.193.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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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담회
9. 11 사건이 미국사회에 어떤 변화를 가져 왔는가?.
글쓴이 열린전북 편집부 |
이문근 교수 (전북대 전자공학부)
채수홍 교수 (전북대 고고문화인류학과)
Leonhardt (프린스턴 대학교 인류학 박사, 서강대, 전북대 시간강사)
진행 : 이정덕 교수 채수홍 교수 (전북대 고고문화인류학과)
Leonhardt (프린스턴 대학교 인류학 박사, 서강대, 전북대 시간강사)
통역 : 채수홍 교수
녹취 및 사진 : 최인화 기자 (전북인터넷대안신문 참소리)
진행 : 월간 <열린전북>과 인터넷신문 <참소리>(www.cham-sori.net)가 기획한 이번 좌담은, 9.11 사건 이후 미국사회의 변화의 성격을 진단해 보기 위한 자리입니다. 그 동안 한국 언론들이 9.11 이후의 변화를 대부분 부시 미 대통령의 외교정책 중 미국중심적 반테러전략에만 보도초점을 맞추고 있어, 실제 미국국민들이 어떠한 변화를 겪고 있는지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 측면이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미국정치나 외교의 흐름이 왜 그렇게 나타나는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오늘 토론은 미국에서 오랫동안 생활을 했던 분들을 모시고 이 분들의 경험을 중심으로 9.11 이후의 미국사회의 변화를 점검해 보고자 합니다. 미국의 외교정책이나 전쟁은 간단히 다루고, 언론들이 제대로 다루지 못했던 일반 시민들의 변화의 흐름에 초점을 맞추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자신이 미국에 머무르면서 경험한 생생한 사례들을 중심으로 이야기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에 우리가 어떻게 대응하여야 하는가도 정리하기 위해 이미 언론에서 많이 다루었지만 미국의 대외정책이나 한국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간략하게 논의하겠습니다.
9.11을 기준 시점으로 한 미국에서의 경험
진행 : 토론에 참석하신 분들이 각각 미국의 어느 곳에서 생활하였으며 체류하신 곳의 정치문화적 특징은 어떤 것이었는지 간단하게 설명해 주십시오. 또 9.11을 기준시점으로 언제 미국생활을 하셨는지도 언급해 주십시오.
이문근 : 저는 1981년부터 96년까지, 그리고 2002년 12월부터 2003년 12월까지 미국 필라델피아에 있었습니다. 필라델피아는 미국의 첫수도로 강과 바다를 잇는 항구도시예요. 그리고 동부지역에서 정치, 경제, 문화, 교육 측면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흑인 비율이 50% 이상이기 때문에 흑백갈등이 심하고, 다민족, 다문화의 특성이 강한 지역으로 다른 도시에 비해 진보주의적인 색채가 강합니다. 그리고 도시의 중심부와 교외지역이 분리가 잘 돼 있는데, 중심부를 제외한 도시는 주로 흑인들이, 교외에는 백인들이 있습니다.
이정덕 : 저는 뉴욕에서 85년에서 90년까지 공부를 했고, 그 후로는 95년까지 방학 때마다 방문을 했고, 99년과 2004년에는 2주 정도 조사를 위해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특히 이번에 9월 중순부터 10월 초까지 미국 현지조사를 하면서, 9.11이 미국사회에 생각보다 심각한 영향을 미쳤구나 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특히 미국은 대외적인, 외국적인 요소가 많습니다. 원래 개방적이기도 한데, 중동이나 이슬람 쪽 사람이 많기 때문에 훨씬 더 긴장감이 높은 상황을 볼 수 있었습니다.
채수홍 : 저는 비교적 최근까지 뉴욕에 있었는데요. 94년에 가서 2003년 봄에 돌아와 9년 정도를 거주했습니다. 9.11이 있었을 때는 현장 바로 앞에 서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날 있었던 충격을 가장 잘 아는 사람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레온하르트 : 1980년대에 뉴욕에 살긴 했지만, 9.11이 있었을 때는 루이지에나의 뉴올리안즈에 있었습니다.
진행 : 화두를 구체화하기 위해, 9.11 이후 자신이 머물렀던 지역에서 나타난 특징적인 변화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
채수홍 : 9.11 당시 저는 평소답지 않게 아침 일찍 일어나서 건물 근처를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건물이 폭발돼서 사라질 때까지 비교적 가까운 거리에서 현장을 직접 목격했습니다. 사건 직후 만났던 저희 과의 여성 비서가 굉장히 충격을 받은 모습으로 떨던 모습이 생생합니다. 그녀는 버스를 타고 무역회관 빌딩 옆을 지나가다가 상황을 눈앞에서 목격했습니다. 사건이 일어난 바로 직후의 반응은 지금과 많이 달랐습니다. 제가 있던 대학이 외국 학생도 많고 굉장히 진보적이었기 때문에, ‘당할 걸 당했다’, ‘당해야 미국도 정신을 차린다’는 말도 많이 들을 수 있었습니다. 보통 시민들도 이념과 상관없이 충격에 떠는 모습이었습니다.
놀라운 건 시간이 지나면서, 아주 소수의 진보적인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이런 일이 다시 일어나면 안 된다는 명분 하에 전체 분위기가 굉장히 보수적으로 급변했다는 점인 것 같습니다. 외국계의 경우에는 보수층에게 억압의 기제를 제공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로 목소리를 죽였고, 미국인 특히 백인들의 경우에도 ‘테러는 나쁜 것’이라는 기치아래 보수적으로, 적어도 자기가 평소 가졌던 생각보다는 보수 쪽으로 기우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문근 : 9.11 사태가 벌어진 이후 1년 동안 머물면서 80년대, 90년대와 비교해서 미국사회가 아주 배타적으로 변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쇼핑몰, 관공서, 음식점에 들어가는 것이 예전엔 자연스럽고 문제가 없었는데 최근 방문에서는 외국인에 대한 의심이나 적대감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대화과정에서 미국 중심주의적인 사고를 많이 접했고 국수적, 보수적인 느낌을 강하게 받았습니다.
이정덕 : 저는 이번 9월에 월드트레이드 센터의 그라운드 제로에 가봤는데, 저녁 6시인데도 참배객이 많았고, 사진과 꽃도 굉장히 많았습니다. 3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이 사건에 대한 정서가 상당히 남아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뉴욕에 있는 동안, 맨홀이 폭파해 교통이 통제되는 사건이 있었는데, 사람들이 폭발음을 듣고 테러로 오해를 해서 상당한 소동이 일어난 적이 있었습니다. 공항에 들어가서도 비슷한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예전보다 체크가 매우 심해졌더군요. 지문 찍고 사진 찍는 것은 물론이고, 가방을 비행기 짐칸에 부쳤는데, 나중에 가방을 보니 원래 묶어뒀던 줄이 없어졌습니다. 가방 안을 열어보니 ‘검색했다, 파손에 대해 책임지지 않는다’는 내용의 쪽지가 들어 있었습니다.
또 뉴욕에 있는 동안에 아랍계 테러리스트에 대한 보도가 <뉴욕타임즈>에 나온 걸 봤습니다. 이 테러리스트에 대해 2002년부터 사찰하고 도청했다는 내용도 들어 있더군요. 중동계에 대한 사찰이 광범위하게 퍼져있고, 중동 또는 이슬람계에 대한 불안의식이 많이 퍼져있는 것으로 느껴졌습니다.
레온하르트 : 저는 미디어가 부시를 다루는데 큰 변화가 생겼다는 점을 특히 눈여겨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9.11전에 부시에 대한 미디어의 평가는 ‘현명한 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똑똑한 친구는 아닌 것은 분명하다’, 또는 ‘정치적으로 굉장히 많은 위험성을 안고 있다’는 식이었습니다. 9.11 이후로는 부시를 바보 취급하던 농담들이 갑자기 중단됐습니다. 또한 9.11이 미국 외교정책의 엄청난 실패를 반증하는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반대로 포장되는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9.11 사건 이후 미국사회는 정말 보수우익화 됐는가?
진행 : 학계와 언론에서는 ‘9.11 사건 이후 미국 사회에 강경한 보수 우익이 득세하고 국민여론이 이에 동조하고 있다’고 단정하고 있습니다. 이런 분석이 맞는 것일까요? 정말 미국이 보수 우익으로 선회하고 있는 것일까요?
이문근 : 그동안 미국사회를 주도해왔던 세력구도에 여러 가지 변화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대표적으로 베트남전쟁 이후 반전운동세대가 정치, 문화, 사회, 교육 등 여러 가지 측면에 영향을 끼치고 있었습니다. 이와 함께 미국 안의 여러 가지 갈등, 흑백갈등, 빈부갈등, 지역갈등 등 여러 내적 모순을 극복해야 한다는 흐름이 많이 부각됐었습니다. 이와 더불어 소련 붕괴 등 대외적인 상황변화에 따라 미국이 능동적으로 변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들이 있었습니다. 9.11 이후의 대표적인 변화를 보면, 이와 같은 역사적 흐름에 의해 상대적으로 소극적이었던 보수 세력, 군산복합체와지지 세력, 보수기독교세력 등이 표면화되면서, 기득권을 확보하려는 움직임이 있었고, 권력화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여기에 중요한 역할을 했던 세력은 메이저 방송과 언론이었습니다.
이정덕 : 저는 의견이 조금 다릅니다. 1960년대 민권운동의 영향으로 미국에서 진보적인 성향이 확대됐었는데, 80년대부터 미국의 보수화가 다시 시작되지 않았는가 생각합니다. 특히 레이건의 등장 이후에 보수화가 상당히 진행됐고, 클린턴 정부조차 공화당 정책과 민주당 정책을 혼합해 상당히 실용적인 노선을 갖게 됐습니다. 그리고 1980년대 레이건정부가 내건 소위 기독교 가치, 패밀리 밸류(family value 가족주의) 등 보수적인 가치관이 상당히 확산됐습니다. 저는 이것이 9.11 사태 이후로 더 표면화되고 강화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예전엔 선거에 보수우익 세력의 결집하는데 한계가 있었는데, 9.11 이후로는 보수세력의 결집이 상당히 능동적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보수세력이 거의 반절에 가까운 세력으로 확대되었고 예전에 비해 비율이 적어도 몇 퍼센트 정도는 높아진 것으로 보입니다. 남부지역에 주로 기반하고 있는 기독교 펀더멘탈리스트(Fundamentalist 근본주의자)나 에반젤리즘(Evangelism 복음주의) 등의 세력이 지속적으로 확대돼서 공화당이 남부를 휩쓰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런 변화들과 9.11 사건이 맞물려 보수화가 훨씬 강화되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이문근 : 다른 측면도 있는 것 같습니다. 미국사회에서 그간 노출시켰던 계급갈등, 도농갈등, 인종갈등 등의 다양한 문제가 대립관계를 통해 노출됐고, 그걸 해결해야 한다는 많은 목소리가 있었거든요. 그런데 9.11 과정에서 그러한 목소리가 전적으로 억압되고 사회문제화 되지 않는 결과가 발생하고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이정덕 : 그 부분에는 저도 동의합니다. 예를 들어 복지가 축소되고, 소수민족 우대정책이 축소되고, 의료문제 개선노력을 포기하는 등의 보수화 경향이 80년대 이후부터 계속 진행돼왔다는 뜻에서 말씀드렸습니다.
채수홍 : 저도 이정덕 교수님 의견에 동의하고 중요한 논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부 미디어들은 미국이 갑자기 변한 것처럼 보도하고, 미국이 (보수화 경향으로) 대처한 것처럼 한국이 대처해야한다는 방식으로 나가는데, 이는 미국사회에 대한 몰이해에서 나온 것입니다. 미국사회는 보수와 진보로 대립 양분돼어 왔고 진보의 목소리가 높아지는 와중에 보수의 목소리가 좀 더 높아질 수 있는 계기가 9. 11을 통해 형성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해 보수가 최근의 정세에 힘입어 정치적으로 이슈를 선점하고 있는 것일 뿐인 것 같습니다.
이와 같은 진보-보수 간 대립의 역사적 연속성에도 불구하고 9. 11이 몰고 온 변화가 있는 것 같습니다. 보수-진보를 다 아울러 계급적으로 가진 자, 특히 백인들이 이걸 명분으로 새로운 형태의 차별을 만들어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해, 9.11 이후 특징적인 변화의 하나가 뉴 레이시즘(New Racism) 즉 신인종차별주의의 강화인 것 같습니다. 공항에서 이정덕 교수님의 짐을 뒤지고 체크하는데 백인의 짐을 뒤질 때 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을 투여하는 것도, 일상에서 목격할 수 있는 신인종차별주의의 예일 것입니다. 일상에 여러 차별을 받고 있는 경우는 특히 권력이 없거나, 여자거나, 백인이 아닐 경우입니다.
레온하르트 : 사실 미국사회는 100년 전부터 보수적인 경향이 있었던 사회입니다. 하지만 9.11이 몰고 온 특징적인 변화가 하나 있습니다. 시민과 외국인에 대한 권리 침해를 제한해 오던 과거와 달리 이런 제한에 대해 갑자기 관용적으로 변했다는 것입니다. 물론 미국사회의 이런 전제적(專制的)인 방식이 과연 일시적인 것인가는 10-20년 전으로 돌아가야 제대로 얘기할 수 있는 문제입니다. 보수주의는 부시에게 가장 극단적으로 드러났을 뿐이고, 1980년대 닉슨 시절부터 시작해서 미국의 북동부의 진보적 경향과 남서부의 보수적인 경향이 양립해 온 것이 사실입니다. 그리고 이런 대립이 레이건 때 배가된 것이 분명합니다. 여기에 부시가 레이건의 정책을 몇 배 배가시킨 보수주의를 표방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될 것 같습니다. 물론 부시가 보수주의를 정말 성공적으로 배가시킨 것인가는 몇 년 후에 판단해야 할 질문입니다.
미국의 보수 우익적 선회가 미국사회내부에서 나타나고 있다면 어떤 집단들이 이를 동조하고 누가 이를 따르는 것일까요? 가장 많은 피해를 보고 있는 인종, 민족, 계급은 누구일까요?
이문근 : 보수우익화의 피해자는 당연히 사회를 진보적으로 변화시키고자 하고 그 필요성을 느끼는 세력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미국사회의 보수화 경향이 역사적으로 지속되어 오면서 이들의 입지가 약화된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보수화가 9.11을 계기로 부시 정부를 통해 강화되고 있다면, 이는 역으로 미국사회를 진보적으로 변화시키고자 하는 세력들이 미국 안에서 뿐만 아니라 대외적으로 해야 할 일의 비중이 커지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들이 대내외적으로 정치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를 갖고 있다고 봅니다. 이런 진보적인 세력으로는 미국사회의 근본적인 문제인 빈부의 문제, 즉 소수에게 권력과 부가 집중되면서 발생된 가난하고, 소외되고, 동시에 억압을 받고 있는 집단들을 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인종으로는 흑인과 히스패닉(hispanic 중남미계)이 중심이 되겠고 여기에 미국사회의 변화를 갈망하고 주도하는 지식인과 운동가를 포함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민주사회에서 가장 중요시 돼야 할 개인의 기본권을 보호받지 못하고 있는 집단들이 가장 큰 피해자가 되고 있는 것은 자명하며, 동시에 이들이 미국사회의 보수화에 제동을 걸 수 있는 세력인 것 같습니다.
이정덕 : 미국에 있으면서 느낀 점은 불법체류자가 급속하게 증가했다는 것입니다. 불법체류자를 체포, 검문하는 일이 늘어났고, 불법체류자의 운전면허도 앞으로는 허가하지 않겠다고 합니다. 외국적인 요소를 많이 배제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런 정책이 테러와 무관한 사람들에게까지 영향을 주고 있지만 사회적으로 용인되고 있습니다. 또 중동인에 대한 감시와 도청이 엄청나게 증가했다고 합니다. 아리조나 지역에서는 9.11 이후에 백인이 중동인을 죽이는 일도 생겼는데, 그 중동인은 미국시민권을 가지고 있었는데도 그런 일을 당했습니다. 심지어 유학생에 대한 감시도 증가했습니다. 유학생이 학교를 옮길 때는 반드시 (정부에) 신고를 해야 하는 등 감시체제가 강화됐습니다. 중동인들은 대학 입학에서조차 아예 낙방하는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미국이 폐쇄적으로 가고 있는 겁니다.
또한 시민들이 조그만 사건에도 불안에 떠는 일이 제가 2주간 체류하는 동안 세 번이나 있었다는 사실도 주목할 만 합니다. 맨홀 폭파사건은 이미 말씀 드렸고 뉴욕에서 외부지역으로 나가는 철도가 마비된 사건과 맨하탄 시내에서 총격이 일어난 사건이 있었습니다. 후자의 경우는 맨하탄에서 경찰이 범인을 사살한 (미국에서는) 평범한 사건이었지만 사람들은 테러가 일어난 것으로 생각하고 놀랐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주민들의 불안감이 상당히 일상화된 것입니다.
이러한 분위기가 한인교포, 특히 상인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이들은 테러 때문에 사업이 안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고 사회 전체에 대해 보수적인 견해를 내놓고 있었습니다. 미국은 전체적으로 기독교에 의해 대표되는 문화라고 생각하거나 이슬람교도나 히스패닉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의식이 팽배해 있었습니다. 한 교수가 히스패닉이 미국문화의 기본가치를 훼손하고 있고 이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내용의 책을 펴냈는데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분위기였습니다. 이런 걸 보면 9.11 이후 분위기에 편승하는 집단들이 보수우익 뿐만이 아니고 종교인이나 사업을 하는 사람들도 테러에 대한 불안감에 의존해 외국적인 요소, 비기독교적인 요소를 점점 더 배척하고 있는 듯합니다.
중요한 점은 이런 현상을 공화당이 적극 활용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대선 후보 토론의 자리에서, 케리 민주당 후보가 외교를 다국적 회유정책을 통해 다국적으로 친국을 형성하겠다고 하니까 공화당은 ‘테러나 국가안위 문제도 외국에 의존 한다’고 비판했습니다. 이런 세력구도는 인종이나 민족, 계급에 있어서 특정집단이 주도 한다기보다는 다양하게 얽혀있는 것으로 보는 것이 맞을 것 같습니다. 주도적으로는 기독교 백인이나 공화당 세력이 보수화를 선도하고 있지만, 상당한 소수민족들도 동조하는 현상이 많이 나타나고 있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문근 : 덧붙이자면 한인사회내의 종교집단의 보수화가 뚜렷하고 이들도 정치적 세력화를 시도하고 있는 집단이라는 점을 잘 알아야 할 것 같습니다. 이들의 영향으로 한인교포 사회에도 보수적인 의식이 팽배해있는 것 같아요. 제가 있었던 필라델피아도 한인 인구가 7~10만사이인데, 한인록(韓人錄)을 보니 교회가 500여개나 되더라고요. 이들 중 대부분의 교회가 보수주의적인 성향을 갖고 있었습니다. 미국의 진보운동이나 한인사회의 기본권 확보를 위해 진보적으로 활동하는 교회는 한 두 개 정도에 불과합니다. 한국에서 국가보안법 문제에 대해 보수집단이 폐지반대 대규모 집회 등을 하는 것과 유사한 것 같습니다.
이정덕 : 뉴욕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북핵 문제에 대한 강경대응을 주장하는 사람이 아주 많아졌고, 한국의 이라크 전쟁 참여를 적극 바라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국보법 폐지도 반대하는 사람들이 많았고, 예전에 비해 한인사회도 상당히 보수화된 경향이 컸습니다.
채수홍 : 한국사회에서도 거대담론의 문제가 제기되고 있지 않습니까. 어떤 문제를 다룰 때 이것이 정말 어느 정도 영향력과 파급력이 있는 지에 대해서는 신중을 기해 판단할 문제입니다. 미국사회의 현재 변화가 민족, 계급, 성과 관련된 기존의 차별을 어느 정도 강화하는 기제인가는 간단히 얘기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최근의 변화들이 정말 9.11 때문인가 아니면 미국의 경제적인 싸이클 때문인가, 아니면 또 다른 문제와 관련되어 있는가는 적어도 사회과학적으로는 쉽게 판단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닌 것 같습니다. 오히려 두 가지 즉, 9.11과 보수화를 너무 쉽게 연결시키는 분석에도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어떤 사회들이 보수화된 사회분위기에 편승하여 이전과 달리 어떻게 리-프리젠티이드(Represented 재현)되는가는 눈여겨보아야 할 사항입니다만 정말 어떤 것이 미국의 보수화를 이끌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좀 더 신중한 분석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마찬가지로 미국의 대외적인 측면에서의 독선과 차별은 분명하게 진행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왜 그런가와 어떤 결과를 나을 것인지에 대해서는 좀더 신중하게 다시 얘기해 보아야 할 부분일 것 같습니다.
레온하르트 : 9.11의 영향을 확실하게 받은 것은 여행업입니다. 항공사는 힘이 있기 때문에 얼마나 부정적인 영향을 받았는지 확실하지 않지만, 작은 여행사에 종사하는 여행업자나 관광가이드, 웨이트리스 등에게 분명한 영향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미국에 와서 미국을 보는 관광이 힘들어졌습니다. 미국인들은 그 문제를 실감을 못하고 있습니다. 관광업이 특별히 손해를 보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누가 이익을 보고 있느냐라는 질문에 답해 보자면 개인적으론 캐리가 이익을 봤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그럴 수 있을지 확신할 순 없네요. 재미있는 건 세계화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펑크나 무정부주의자로 여겨졌다가, 9.11 이후로 진지한 정치운동가로 인식되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9.11 이후에 테러가 세계화의 결과로 나타났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이들의 운동에 큰 변화가 생겨났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들이 세계화의 반대 논리로 테러를 이용하면 그 과정에서 애초 자신들이 주장하고자 했던 것이 변질될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대선이후의 미국의 변화 가능성
진행 : 현재 미국대선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부시나 케리 가운데 누가 이기는지에 따라 9. 11 이후에 변화해 온 미국사회의 이념적인 정향이 강화되거나 다른 방향으로 선회할 가능성이 있는 것일까요?
이정덕 : 부시나 케리 중 누가 되더라도 미국이 갖고 있는 근본적인 보수 색채는 커다란 변화가 없을 것으로 봅니다. 보수화 경향이 9.11 이전부터 지속돼 왔기 때문에 급격한 변화는 없겠지만, 그것이 부시와 케리의 차이가 작지만 분명히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케리는 테러 문제에 대해 당사자, 즉 빈 라덴 쪽의 책임을 추궁하는데 관심이 있고 이라크 전쟁은 잘못된 것이며 국제적 협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하기 때문에 협조체제가 구축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부시가 하고 있는 미국 중심의 다른 국가에 대한 배척 정책 보다는 상당히 완화된 세계정책이 나타날 것입니다. 국내에서도 이민자, 유학생, 중동계, 불법체류자 등에 대한 감시는 계속하겠지만 완화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불법체류자에 대한 영주권 문제도 케리가 좀 더 개방적으로 갈 가능성이 높습니다. 현재 부시의 강경하고 신보수주의(Neo-conservatism)적이고, 기독교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경향은 케리가 대통령이 되면 약화될 것입니다.
이문근 : 부시와 케리는 미국 정치구도를 대표하는 상징이라고 봅니다. 그러나 부시와 케리의 대결이 진보냐 보수냐의 대립 문제가 아닌 건 확실합니다. 우리는 대부분 민주당과 공화당을 진보와 보수로 이분법화 하는 잣대를 댑니다. 그러나 그건 아닙니다. 정책적으로는, 공화당은 사회에서 발생되는 문제를 개인이 책임져야 한다는 원칙을 갖고 있고, 민주당은 국가와 사회가 책임져야 한다는 업무분담 정도의 차이입니다. 그래서 공화당은 사회복지정책을 줄이고, 세금을 줄이며, 개인의 역할을 강조하는 반면, 민주당은 세금을 많이 걷고 개인이 할 수 없는 것을 국가와 사회가 하도록 합니다. 그런 면에서 민주당과 공화당의 차이는 우리나라의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의 정책적 차이 정도입니다.
부시와 캐리는 미국사회의 지배계급이나 주도세력을 대변하는 우익적 성격이 강하다고 봅니다. 단지 정책적인 차이에서 얼마나 강경한가, 우회적인가의 차이라고 봅니다. 장기적으로 보면 대외적으로는 부시의 강경화 정책이 제3세계나 미국의 정책에 저항하는 민족세력들의 민족자주운동을 강화시키게 되는 경향을 확대시킬 것입니다.
채수홍 : 저는 상징적으로나 실질적으로나 중요한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치적 지도자들이 어떤 성격과 철학을 지니고 있는가에 따라 순식간에 커다란 흐름의 변화가 생겨날 수 있다고 믿습니다. 미국대선은 대외 정책뿐만 아니라 미국 내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향은 물론이고, 미국사회가 어떤 사회여야 하고 어떤 정체성을 가져야 하는가의 문제와 연관되면서 대외정책에서도 순식간에 변화를 몰고 올 수 있는 영향력을 가진 이벤트라고 생각합니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사회 내에는 미국을 보는 두 가지 관점이 혼재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한편으로는 미국사회가 굉장히 변했다, 우경화돼 있다, 그에 따라 미국의 눈치를 봐야한다는 생각이 굉장히 득세하고 있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부시나 캐리나 차이 없다고 얘기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한국 사람들이 대개 부시를 싫어하는데, 실제론 ‘그런 정서를 갖는 게 어리석다’, ‘캐리도 똑같은 놈이다’라는 논리를 갖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실제 클린턴, 레이건, 부시 등 역대 대통령 각각의 정책은 미국 국내와 해외에서 많은 변화를 만들어 냈습니다. 세부적으로 실현되는 정책에 있어서 누가 되느냐에 따라 많은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레온하르트 : 저도 외교정책에서 큰 변화가 있을 거라고 봅니다. 실질적이고 물질적인 변화는 어느 정도일지 모르지만, 적어도 케리가 외국사회에서 받아들여지기 쉽다는 건 확실합니다. 아무도 부시를 진정으로 상대하고 싶어 하지 않는 점을 주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변화가 있을 겁니다. 지금의 정책을 펼치는데 있어 부시는 예측 가능한 인물이 아니고, 위험하고 호전적인 인물이었습니다. 자기 임기동안 전쟁을 두 번이나 일으켰는데, 이게 다 예측 불가능한 것이었습니다. 케리가 되면 조금이나마 예측가능하고 안전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미국사회의 변화가 한국사회에 미친 영향
진행 : 미국사회의 변화, 특히 이념적인 변화가 한국사회의 정치적인 스펙트럼이나 북한문제에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될까요?
이정덕 : 문제를 꺼낸 제가 먼저 의견을 말해 보겠습니다. 미국사회의 강경보수정책이 부시에 의해 추진되면서 한국정부와 많은 트러블이 있었고, 미국의 그런 변화들이 한국 내부의 갈등을 부추기는 경향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한국 내부의 보수적 세력들이 부시의 강경정책을 지지하고, 진보적 세력은 부시 정책이 잘못됐다고 주장하고 미군의 한국주둔, 미국의 세계화 정책에 대한 반대를 강화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미국을 매개로 한 여러 문제에 대한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미국이 한국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고 생각하고 있고, 미국의 대선과 보수화 경향이 한국의 정치경제뿐만 아니라 시민사회에까지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은 미국의 정책과 사회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고, 이건 해방 후로 줄곧 조성되어 온 상황입니다. 그런데 미국의 보수우익화가 한국의 민주화와 반대되는 방향으로 전개되면서 좀 더 첨예하게 대립돼 나타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채수홍 : 한국사회에서 상징적이고 이데올로기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고, 이런 변화에 미국의 변화도 한 몫 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토론 초반에 미국사회가 정말 변화하고 있는가의 문제를 얘기를 했지 않습니까? 앞에서 말씀드린 것 처럼, 미국 변화의 성격과 방향이 명확하지 않고, 적어도 우리가 이해하고 있는 것 보다 복잡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변화에 대한 미국의 미디어와 시민들의 현안에 대한 재현(Representation) 방식, 어떤 사람의 목소리가 작아지고 커졌는지 그런 가시적인 현상에 주목해 보는 것이 실제적인 변화여부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한국사회도 같은 맥락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미국에서는 국민들 중 반이 진보, 반이 보수를 찍듯 선거가 이루어졌습니다. 한국에서도 예전에는 보수가 훨씬 더 많았지만, 이제는 보수와 진보가 균등하게 나눠져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누가 이슈를 주도하고 명분을 갖는가의 문제에 있어서 미국과 마찬가지로 한국에서도 주도층, 즉 전체를 대표하는 명분을 가질 수 있는 세력이 달라질 것입니다.
예를 들어, 부시의 재임기간 동안 한국에서는 보수 쪽이 목소리를 냈다고 생각합니다. 진보 쪽이 대통령 탄핵 등의 사건으로 세력을 확대하고 정치적인 이익을 얻었다고 분석되지만, 실제로는 보수 쪽이 목소리를 크게 내왔으며 오히려 목소리를 너무 크게 냈기 때문에 손해를 본 것이 아닌지 의심해 봅니다. 예전에는 보수는 가만히 있어도 이념 게임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었지만 요즘은 너무 많이 나서면서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국가보안법 사수를 위해 보수단체가 대규모 집회를 하는 현상도 미국이 보수화되는 경향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미국의 변화가 그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공간을 어느 정도 확대해 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케리가 대통령이 된다고 실질적인 변화가 일어날 것인가는 확신이 없습니다. 그러나 보수파들이 한국의 여론을 주도해 갈 가능성은 훨씬 줄어들지 않을까 예상해 봅니다. 다시 말해 한국 사회를 상징적으로 대표할 수 있는 세력의 변화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문근 : 먼저 미국사회의 변화가 한국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논의하는 배경에 기본적으로 어떤 논리가 있는가를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가장 기본적인 것은 시장논리입니다. 예를 들어 미국의 자본이 한국이나 동아시아에 미치는 영향정도 라는 경제논리에 따라 이해관계를 어떻게 풀어가느냐는 정치논리가 나온다고 봅니다.
미국 자본주의는 많은 위협을 받고 있습니다. 유럽연합이 만들어지고 유로화가 달러에 대항하는 자본으로 세력화 되고 있습니다. 소련의 붕괴와 중국의 시장화가 전개된 이후 팍스아메리카의 시대와는 다른 방식의 자본 경쟁체제가 유도되고 있습니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미국은 경제주도권을 빼앗기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런 점에서 부시와 케리의 정책적 차이는 있겠지만 미국의 세계화는 더 강화될 것이고, 세계화를 위해 군사적, 외교적 정책이 더 강화될 것입니다. 미국사회가 그만큼 강경화 하고 있고, 강경정책이 한국에게는 더 강경화된 정책으로 나올 것입니다. 특히 WTO, FTA, IMF 등 외국이 한국자본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려는 시도도 거세어 질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북한과의 관계에서도 경제논리가 깔려 있다고 봅니다. 경제논리 위에서 북한과 미국의 힘의 논리가 전개되는 것 같습니다. 이 논리에 기반을 두고 핵무기, 미사일 문제 등이 표면화되고 있는 거죠. 특히 유럽의 자본이 강화되는 것과 함께 일본과 중국을 중심으로 한 동북아시아 자본의 세력화에 미국이 위협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이 남한 자본의 헤게모니를 얼마나 장악하느냐도 마찬가지 논리에서 문제가 될 것입니다. 미국은 한국의 대미 의존성을 더 강화시키고 그걸 기반으로 동북아시아에서 형성될 수 있는 동북아시아 자본의 무력화를 시도하려 할 것입니다.
진행자 : 국내 여론주도층이 미국사회의 변화를 제대로 전달하고 있다고 보십니까?
이정덕 : 이번에도 질문을 구체화하는 의미에서 제가 먼저 대답해 보겠습니다. 미국과 한국의 관계를 보도하는 태도에 있어서 한나라당, 조선일보, 반핵반김단체 등의 자세와 한겨레신문이나 이라크참전 반대운동, 촛불시위 집단 등의 자세에 커다란 차이가 있습니다. 특히 보수 입장의 단체들은 미국을 옹호하는 친미적인 자세를 넘어서서 미국에 종속적인 숭미적인 태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런 태도가 부시 대통령의 등장과 미국사회의 변화와의 직접적인 영향이 있는지는 더 판단해 봐야겠지만, 분명히 9.11과 맞물려 강화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들은 미국사회에 나타난 변화나 문제점을 보여주기 보다는 미국이 한국을 반대하거나,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입장을 표현할 때 과장된 해석과 보도로 불안감을 확대하는 역할을 합니다. 해석이 안 이루어진 상태에서 미국이 한국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대한 단편적인 보도를 하고, 이것을 국내에서 이념정쟁에 활용하는 모습입니다. 이에 비해 한겨레 등의 보도태도는 비교적 객관적으로 미국의 흐름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 제대로 이해한 다음에 대응하자는 입장인 것 같습니다. 일부 언론과 보수적인 사람들에 의해 미국사회 변화의 왜곡전달 현상은 심해지고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이문근 : 국내 언론이 정치적 측면에서 미국의 변화를 제대로 전달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민주당과 공화당의 문제를 진보와 보수의 문제로 대립시키는 것부터 문제가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민주당과 공화당은 똑같은 우파이고, 단지 정책적인 차이만이 있을 뿐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나라도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은 우파 성향이 강한 정당입니다. 그런데 언론은 이걸 보수와 진보로 대립시켜서 미국과 비슷한 정당구조로 설명하려 합니다. 실제 양당의 정책적인 차이는 많지 않습니다. 정책적 수행방법에 차이가 있을 뿐이라고 봅니다. 노무현 정부의 경우 경제정책을 보면 미국의 세계화에 동조해 적극적으로 정책을 이행하고 있고 김대중 정부 때의 정책과도 일맥상통합니다. 외교정책에 있어 6자회담의 경우에는 김대중 정부 당시보다 오히려 후퇴한 경향이 있습니다. 이라크 파병문제는 숭미적인 정책의 대표적인 케이스라고 봅니다. 특히 SOFA(한미주둔군지위에관한협정)같은 군사협정에 있어서 자주적인 국방권을 유지하지 못하고 더욱 더 미국의 동북아시아 패권전략에 종속되는 모습을 보면, 노무현 정부와 열린우리당의 정치적 성향은 한나라당과 차이가 없다고 봅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나라 언론이 부시와 케리의 성격을 명확히 분석하지 못하고 보수와 진보로 대립시키고, 우리나라의 정치구도도 갖다 붙이는 것은, 이런 과정을 통해 그들의 기득권을 확보하려는 의도로 보입니다.
채수홍 : 저는 미국이라는 사회가 가지는 특징과 변화를 이용하는 세력이 한국에 굉장히 많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우파만 그걸 이용했다고 생각하는데, 사실은 우파와 좌파 모두 이런 변화를 이용하고 있다고 봅니다. 특히 미국에서 공부했다는 사람들이 이걸 이용해 자기기반을 강화하는데 이용하고 있다는 점도 눈여겨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한국사회에서는 미국의 변화를 거대한 담론으로 만들어 내 이익을 보려는 세력이 좌우에 모두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미국사회의 변화를 구체적이고 세밀하게 분석하지 않은 채, 하나의 거대한 덩어리로 만들어서 단순하게 표현하는 것은 좌파 우파 할 것 없이 다 똑같다는 거지요. 미국이 이런 사회니까 반대하거나 찬성한다는 식의 이야기가 제가 말하는 거대담론의 한 예가 될 수 있겠습니다. 실제로 인종, 성, 계급, 민족 등으로 분화되어 이들이 복잡하게 얽혀있는 미국사회를 어떻게 그런 식으로 단정지울 수 있겠습니까? 9.11 이후 미국의 문제를 다루면서 정작 자성해야 하는 점은, 이런 거대담론을 가지고 찬반으로 양분돼 싸우는 것이 우리 사회에서 생산적인가의 문제를 생각해봐야 합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한국의 지배 엘리트들은 미국사회를 제대로 이해하려 하기 보다는 미국사회의 변화를 하나의 거대담론으로 만들어 표현하고 이용하려고 있진 않나 자성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진행자 : 마지막으로 미국의 사회의 변화를 우리가 어떻게 이해하고 대응해야 하는지에 대한 총평을 부탁드립니다.
레온하르트 : 이번 대선에서 부시가 적어도 케리와 비슷하거나 유리하다는 것이 현실입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정치 문화적으로 문제가 있는 정치가가 사람들이 좋아한다는 이유나 매력적으로 보인다는 이유만으로 미국사회 내부에 거대한 영향을 미치는 자리에 선택된다는 건 참으로 불행한 일입니다. 더욱이 외국과의 관계까지 생각하면 이번 대선은 세상에 굉장히 많은 영향을 미칠 것이 분명합니다. 미국에서 선동적인 정치가 횡행하는 것은 세상을 위해 불행한 흐름입니다.
이문근 : 해방 이후로 우리나라는 미국의 영향을 절대적으로 받은 나라입니다. 그리고 우리사회, 정치, 문화, 교육 등 모든 부분에서 기득권을 갖고 있는 사람들 중엔 미국 교육을 받은 사람이 많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한국과 미국의 관계, 미국의 실체를 객관적이고 비판적인 시각과 입장을 제시해 주는 역할을 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것이 현실입니다. 오히려 미국주의적인 입장을 우리 사회에 전달하는 경향이 많은 것 같습니다. 대학도 대표적인 예입니다. 그런데 미국이 영국의 지배로부터 독립했던 1776년 독립선언문을 보면 미국이 식민지로부터 해방되기 위한 여러 자유정신이 들어 있습니다. 그 선언문에는 인간의 기본권과 국가의 기본권을 정치경제적 측면에서 확보하기 위한 중요한 자유정신이 들어 있거든요. 그런 정신이 회복되어야 하는 것은 우리 사회도 마찬가지입니다. 한국이 대미종속적인 측면에서 벗어나 국민과 국가의 기본권을 확보하기 위한 중요한 역할들을 지식인들이 해야 합니다.
이정덕 : 미국사회의 문제와 미국과 한국의 관계를 얘기했는데, 한국에서 미국에 대한 논의들이 정치적인 것에만 집중되고 그것도 피상적 논의에 그치고 있습니다. 이런 한계가 미국에 대한 왜곡된 이해를 낳고 동시에 한국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이제 이런 문제를 극복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친미와 숭미를 넘어 서로 간에 협조하고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을 찾아 양국이 서로 당당하게 자신의 이익을 얘기할 수 있어야겠습니다. 특히 한국이 자신의 현실과 이익이 무엇인지 냉정하게 파악하고 이를 미국 측에 관철시키려는 자세가 필요하겠습니다.
채수홍 : 제가 이번 토론에 참여하면서 개인적으로 얻은 교훈은, 첫 번째로 우리가 믿고 싶은 바와 실제 일어난 일에 많은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믿고 싶은 바대로 포장해서 단순화시키는 방식의 왜곡된 거대담론을 해체시키는 것이 큰 과제라는 겁니다. 두 번째로는 미국이 9.11 이후에 겪은 충격을 소화하는 과정을 보면서, 소위 대중이라는 것이 매우 가변적인 존재라는 교훈을 얻었습니다. 그 동안 우리는 미국이 여러 가지 사회문제에도 불구하고 기본적으로는 민주적인 원칙이 안정적으로 지켜지는 사회라고 배워왔고 그렇게 믿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미국 같은 사회도 어떤 사건을 계기로 순식간에 히틀러가 건설했던 사회처럼 변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한국사회가 굉장히 보수적이고 전제적인 형태로 시작되었지만 거스를 수 없는 역사적 흐름에 의해 점진적으로 민주적인 사회로 변모하고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이런 의심의 여지가 없는 경향에 대한 뿌리 깊은 믿음을 배신할 수 있는 흐름이 언제나 가능하다는 경고성 교훈을 최근의 미국사회의 변화가 던져주고 있습니다. 한국사회에서도 박정희 같은 인물이 다시 나타날 수 있고 순식간에 전제 정치로 변할 수도 있다는 점을 경계해야 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 시대에도 군인이 나와 쿠테타를 일으키고 독재를 하는 데에 대다수 국민이 찬성할 수 있다는 사실을 9.11을 통해 배웠다고 생각합니다.
진행 : 긴 시간 좋은 말씀을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미국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것으로 열린전북과 참소리가 공동기획한 ‘9. 11 사건이 미국사회에 어떤 변화를 가져 왔는가’에 대한 좌담회를 마치겠습니다.
(2004/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