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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3.04 14:43:27 (*.70.193.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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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I
미국입장을 따르는 보수와 진보
글쓴이 이문근(전북대교수․전자정보공학) |
군사-석유 자본을 위한 부시의 정책
미국 대선에서 부시가 재선되었다. 부시는 클린턴 정부 이후 지난 4년 동안 미국 석유 및 군산복합 기업 등의 구자본가들의 이익을 위한 일방적인 정책들을 펼쳤다. 그 대표적인 정책은 막강한 살상 무기를 앞세운 무력 침략 전쟁(아프카니스탄, 이라크에 대한 침공)이었다. 이 전쟁의 결과, 이러한 기업은 막대한 이윤을 얻고 있으며, 부시의 재선으로 다시 4년 동안 이러한 이윤을 보장받게 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부시의 재선 소식으로 미국 증시에서 방위산업주, 석유관련주, 제약주 등의 주가가 올랐다 (오마이뉴스, 2004년 11월 4일).
부시 정부의 이러한 정책의 배경에는 어떤 동기와 이유가 있는 것일까? 그 정확한 대답은 물질적 근거자료를 통해 입증해 보일 수 없지만, 수십 년 동안의 통계자료를 통해 그 원인과 동기를 추정해볼 수 있다.
미국의 군사-석유 자본과 IT 자본
2001년 부시 정부의 출범 이후, 특히 911 사태 이후의 원유가 변동을 1970년 이후와 군사적 대립측면에서 비교를 해보면 흥미로운 관계를 발견할 수 있다.
<그림 1>은 2002년 불변가격 기준 원유의 실질가격 변동을 시각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프레시안, 홍기빈의 ‘현미경과 망원경’, 2004년 8월 27일). 이 가격의 변화를 관찰해보면 두 시기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는 제1차 오일 쇼크가 발생하던 1970년 중반부터 1980년 초까지이며, 두 번째는 1980년 초부터 부시정부가 출범하기 전인 2000년까지이다. (이 시기를 편의상 제1차 고원유가 시기와 제2차 저원유가 시기로 구분한다. 당연 1970년대 이전을 제1차 저원유가 시기로 정의한다.) 제1차 고원유가 시기에는 원유가격은 최고 1980년 초 배럴 당 80달러(2002년 불변가격 기준)를 넘기도 했다. 그 배경에는 1970년대의 이스라엘과 아랍 전쟁과 1970년대 말의 이란 내전이 있었다. 즉 군사와 석유 자본의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볼 수 있다. 이 이후, 제2차 저유가 시기에는 원유가격이 1980중반부터 급격히 떨어져, 1999년에는 10달러까지 이르게 되었다. 그 배경에는 1990년대의 금융을 기반으로 한 IT 관련 산업의 급속한 성장과 1991년 소련의 붕괴로 인한 미국 산업구조의 재편성, 즉 군사-석유 자본에 대한 금융-IT 관련 자본의 성장으로 볼 수 있다. 이 시기의 주목할 만한 사실은 원유가가 OPEC나 전문가가 제시하는 배럴당 22~28달러 수준을 유지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림 1)> 미국 소비 물가 지수를 이용하여 불변 달러로 표현한 원유가. 출처: International Financial Statistics through WEFA (series codes: L64@C110 for CPI in the industrialized countries; L76AA&Z@C001 for the price of crude oil; L64@C111 for the U.S. CPI).
두 시기의 두 자본세력 간의 이윤율을 지구적 순 법인 이윤(Global Net Corporate Profit) 측면에서 비교해 보면 <그림 2>와 같다(프레시안, 홍기빈의 ‘현미경과 망원경’, 2004년 8월 27일). 제1차 고원유가 시기 동안, 군사-석유 자본이 이스라엘-아랍 전쟁 기간과 이란 내전전후 기간에 최고 20%와 23%까지를 차지했던 것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이윤율이 제2차 저원유가 시기를 통해 급격히 낮아져 2000년에는 3%까지 떨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건 정말 하늘과 땅 차이이다.). 반면 꾸준히 성장하던 IT 관련 자본은 1994년을 정점으로 군사-석유 자본의 이윤율을 추월해 2000년~2001년에는 이윤율이 최고 14~15%에 상승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여기에 IT 관련 자본과 결탁한 금융자본의 이윤율을 반영한다면 이 이상일 것이다.
<그림 2)> 주의: 순 이윤은 주식 시가를 주가-수익률(PER)로 나누어 계산하였다. 계열들은 월간 단위 자료를 나타내며 12개월 이동 평균으로 다듬어져 있다. 출처: Datastream (series codes TOTMKWD for world total; OILINWD for integrated oil; DEFENWD for defense; INFOHWD for information technology hardware; TELEQWD for telecom equipment; SFTCSWD for software and computer services).
이 두 시기의 두 자본세력 간의 이윤율의 변동이 시사하는 바는 매우 크다. 거의 15년에 달하던 제1차 고원유가 시기 동안, 막대한 이익을 보던 군사-석유 자본이, 그 이후 약 15년에 달하던 제1차 고원유가 시기 동안, 속된 말로 바닥을 치고 있었다. 그 단편적인 예가 2000년 클린턴 정부 말기 GDP 대비 군사비가 3.8%까지 하락한 것을 보면 얼마나 그 정도가 심각했는지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다. 또한 이 시기 동안 <그림 3>(이문근, “석유자원전쟁의 실체”, 열린전북, 2004년 9월)에서 보여주는 바와 같이 미국의 석유 메이저들이 Exxon Co.와 Chevron Texaco Co. 두 회사로 병합 및 인수된 것도 같은 경우의 예라고 볼 수 있다.
한마디로 군사-석유 자본은, 제2차 저원유가 시기, 즉 1980년대 중반부터 2000년까지 (걸프전이 있던 기간을 제외하고) 장장 15년 동안, 금융 기반 IT 자본에 기득권을 빼앗긴 것이었다. 이들이 기득권을 다시 회복하기 위하여 절실히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당연 분쟁이다. 그런데 15년 동안이나 기득권을 빼앗긴 상황인데, 분쟁정도 가지고는 양이 차지 않을 것이다. 당연 전면전이나 대규모 전쟁이어야 한다. 그것도 단기간에 끝이 나면 안된다. 장기간의 대규모 전쟁이어야 한다. 그것도 석유자본과 이해과계가 있는 곳에서의 장기간의 대규모 전쟁이어야 한다. 한 마디로 중동에서의 장기간 대규모 전쟁이어야 한다. 현재 이라크 전쟁이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의 군사-석유 자본의 이윤율을 <그림 2>에서 보면, 군사-석유 자본의 이윤율이 IT 관련 자본의 이윤율을 아직 추월하지 못한 것을 볼 수 있다. 이 또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즉 IT 관련 자본의 이윤율을 추월하고 제1차 고원유가 시기와 같은 기득권을 회복하기 위하여 대규모 전쟁과 분쟁을 필요로 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이는 이라크에서의 전쟁이 아랍 전역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많으며, 아랍지역이 아니면, 군사 및 석유 자본의 이익을 극대화 할 수 있는 다른 지역에서의 분쟁 및 전쟁을 요구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이쯤 되면 섬뜩한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그 다른 지역이 우리 한반도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미국 자본에 의한 주권의 위협
한 나라의 주권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 중의 하나는 경제주권이라고 한다. 한국에서 이 경제주권의 기반이 되는 한국 자본의 특성을 규정하면 다음과 같다: 1) 초기 일제의 매판자본으로부터 해방 후 미군정 통치와 경제원조 및 6․25 등을 거치면서 대미 일변도의 경제구조를 가졌음, 2) 이후 관료자본주의적 경제정책에 의해 외국자본에 의한 경제성장이 유도되었음, 3) 그 결과 한국경제가 자생적 민족경제에 기반을 둔 산업보다는 외국자본의 이익에 부합하는 개발/생산/판매 측면에서의 이식성이 강하여 대외 의존도가 높은, 즉 수입원자와 수출상품 의존도가 높은 산업 정책이 중점이 되었음, 4) 그리고 산업화 과정에서 정치적 비호 하에 자본이 관료적으로 독점화될 수 있었던 정경유착의 고리가 강함.
한마디로 부패한 권력과 탐욕스러운 재벌/기업들에 기반을 둔 우리의 자본이, 1997년 외환 위기 이후, 국내 은행의 30%가 외국 자본에 넘어갔고, 또한 국내 주식시장의 43%가, 특히 블루칩(우량기업)의 경우 약 60%가 외국 자본에 넘어갔다 (KBS 스페셜, 2004년 7월 27일~31일). 우리 국부의 상당부분이 외국 자본에 넘어간 것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의 경제 주권의 상당부분을 외국 자본에게 빼앗긴 것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1) 이 외국 자본의 대부분이 미국의 자본이라는 점과 2) 이 기간동안 금융 기반 IT 관련 자본의 이윤율이 <그림 2>에서 보는 바와 같이 최대에 달했다는 점과 3) 이러한 결과 및 성과(미국의 입장에서는 엄청난 성과이다)를 준비하기 위해 미국은 이미 1989년부터 워싱턴 컨센서스(Washington Consensus)라는 이름의 정책으로 준비를 했다는 점과, 4) 1990년대 초, 클린턴 정부가 들어서면서 IMF, IBRD, 미국 내 정치경제학자들, 행정부 관료들의 논의를 거쳐 미국 시장경제체제의 대외확산 전략으로써 “워싱턴 컨센서스”를 정립되었다는 점과, 5) IT 관련 산업 및 기술이 이러한 작업(?)에 최대한 활용되었다는 점이다, 그것도 단시간에.
이후, 부시 정부는 군사-석유 자본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한 정책을 한반도를 중심으로 대대적으로 펼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북핵을 빌미로 한 동아시아에서의 미군의 재배치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사항은 재배치는 표면적인 재배치일 뿐 그 내용을 보면, 전략적 변화를 포함하고 있다는 점이다. 즉 전쟁을 수행하기 위한 전략이 바뀜으로 이에 수반하는 전술, 즉 수단이 바뀌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기존의 많은 군사 관련 수단들의 교체를 의미한다. 미사일 (핵도 포함), 전투기, 탱크 등의 무기 뿐 아니라 전쟁을 수행하기 위한 기존 인프라의 교체를 의미하기도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새로운 군사기지로 이전해야 하며, 그에 따른 엄청난 투자가 이루어 져야 한다. 이럼 이러한 재배치에 누가 가장 큰 이익을 볼 것인가? 당연 군사 관련 미국 기업들이다. 그렇다면 부담은 누구에게? 우리 입장에서 보면, 당연 대외적으로는 미국의 국민들이겠지만, 대내적으로는 우리 국민들이 부담해야하는 것들이다. 이것뿐이겠는가? 당연히 미국군대의 동아시아에서의 전략적 재배치라는 명분에 부합하도록 우리 군대의 전략적 재배치가 따라야 하며, 여기에는 필연적으로 한국군의 현대화라는 명분으로 미국의 무기를 수입할 수밖에 없게 된다. 한 예로 정부지출의 약 20%를 차지하는 국방비(2004년 기준)의 약 55%가 미국의 무기를 구입하는데 사용되는 것과 미군 부대 이전이라는 명목으로 지출되는 이전 비용을 보면 (아직 정확한 비용이 나오지 않았지만), 그 정도가 얼마나 심각한지 단편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여기에다, 만에 하나, 우리 한반도와 근해에서 대량의 석유라도 나오게 된다면, 어떤 빌미를 들어 이것을 이라크, 베네주엘라, 나이지리아에서처럼 독차지하려고 할지 불안하기만 하다.
또 다른 악제: 달러 약세
부시 재선 이후, 부시의 군사-석유 자본을 위한 정책에 설상가상으로 달러의 약세가 계속되고 있다. 군사-석유을 위한 일방적인 부시의 정책은 IT 관련 산업과 경제 침체를 가져왔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부시 정부는 미국의 수출을 증대하고, 수입을 감소시켜, 고용을 창출하기 위한 달러 정책을 수행하고 있다. 또, 미정부 발행 채권이 1조 달러 이상을 넘어섰고, 경상수지 적자 때문에 매일 40억 달러의 국제자본이 유입되어야하는 상황에서, 달러의 미국 유입을 촉진시키기 위한 약한 달러 정책과 더불어, 저금리 정책 이후, 고금리 정책으로 점진적으로 전환하고 있다. 즉 두 마리의 토끼, 군사-석유 자본을 위한 정책의 실현과 이로 인한 부작용을 동시에 처리하겠다는 의도이다.
그렇다면 이런 부담을 누가 져야 하는가. 달러의 약세는 원화의 강세를 의미한다. 그리고 이는 원화절상으로 이어질 확률이 높다. 원화절상이 이루어지면 어떤 결과가 나타날까? 그리고 그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일까? 이걸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1985년에 있었던 미국과 일본 간의 플라자 합의를 이해해야 한다. 플라자 합의를 통해 엔화는 달러당 240엔에서 120엔으로 2배가 수직상승했다. 그 결과, 일본의 거품경제는 치명적인 타격을 입었고, 1990년부터 지금까지 불황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원인이 되었다. 그럼 그 원인은 무엇일까? 그 원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미국의 재정 상태를 파악해야 한다. 미국의 재정 적자 규모는 총4125억5300만달러(2004 회계연도, 2003년 10월~2004년 9월)이며, 무역 적자는 5900억달러(2004 회계연도)에 달한다. 이를 두고 쌍둥이 적자라 한다. 또한 총 3조7천억달러에 달하는 미국 국채 절반가량을 외국 정부와 개인이 보유하고 있다. 특히 일본이 4천4백31억 달러(1위), 영국이 1촌5백11억 달러(2위), 중국이 1천2백39억 달러(3위)를 가지고 있다. 또한 주요 국가들의 달러보유액을 보면, (1위) 일본, 8천3백79억달러(2004년 10월말), (2위) 중국 5천1백45억달러(2004년 9월말), (3위) 대만 2천3백50억달러(2004년 10월말), (4위) 한국1926억달러(2004년 11월말)에 달하고 있다. 이러한 달러의 해외 의존도를 낮추기 위한, 미국의 약한 달러의 정책은 필연적이며, 이에 따른 엔화, 위엔화, 한화에 대한 평가절상은 이러한 결과일 수 있다. 이러한 작업이 가능한 이유는 국제화폐로 사용하는 달러가 금본위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달러의 약세와 이에 따르는 원화의 강세에 대한 부담은 누구에게 전가되는가. 그 부담은 고스란히 우리 국민에게 전가되고 만다. 우리 입장에서 약한 달러를 극복하기 위해 약한 달러를 강한 유로화로 전환하는 방법도 있겠지만, 여기에는, 달러 매도 때 약한 만큼의, 매수 때 강한 만큼의 이중 부담이 뒤따른다. 반면, 달러의 약세를 막기 위해 약해질수록 시장에 매도되는 달러 물량을,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최대한 확보하기 위하여, 달러를 매수하느라 원화가 바닥이 났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은행은 원화를 추가로 발행해야하는 상황에 봉착했다. 그리고 이렇게 달러를 매수한다고 해도 원화절상이라는 다음 상황을 피할 수도 없다. 결국 이렇게 되면, 미국이 적절한 달러 정책을 유지하기 위해 시장에서 처리해야 하는 달러의 초과분에 대해 한국과 일본 등 미국과 달러에 종속적인 경제 기반을 가진 나라들이 적절히 매수해야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경상수지적자를 메우기 위하여 매일 (휴무일 제외) 약 40억 달러(2003년 기준)를 유입해야 미국은 정부가 자국의 빚을 갚기 위해 매일 필요한 약 10억 달러의 자금를 쉽게 조달하고 있다. 그리고 미국은 필요한 만큼 종이돈을 다시 찍어내기만 하면 된다. 달러가 금본위제가 아니기 때문에.
무지에 억지를 더하는 언론들
이런 상황인데도, 미대선 내내, 부시와 켈리, 즉 공화당과 민주당의 정책과 입장을 보수와 진보의 대립시키는 권력과 자본에 목을 메는 한국의 많은 언론들을 보면, 그 언론들이 과연 어느 나라 언론인지, 그 언론에 종사하는 언론인들이 어느 나라 국민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미국에서의 보수와 민주의 차이는 무엇일까? 정책적으로는, 교육, 의료, 복지 등과 같은 사회 복지적 문제를, 공화당은 개인이 전반적으로 책임져야 하며, 민주당은 국가가 부분적으로 책임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래서 공화당은 재정부분에서 사회복지정책을 대대적으로 줄이고, 이에 따르는 세금을 줄이며, 개인의 역할을 강조하는 반면, 민주당은 누진세 등을 통해 세금을 많이 걷어 사회복지정책을 강화하고자 한다. 그러면 민주당의 정책은 진보가 의미하는 정책적 실천을 수행하고 있는가. 아니다 미국은 많은 유럽 국가들에 비해 형편없는 사회복지 정책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의료제도나 대중교통 측에서 보면 우리 한국보다도 못한 정책과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나아가 전 인구의 5%가 미국 부의 60%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부의 편중현상이 아주 심한 나라이다. 민주당의 정책은 이러한 시스템의 변화를 요구하는 정책은 아니다. 즉 공화당이나 민주당은 미국의 가진 자들을 위한 정당인 것이다.
이런 입장은 살펴본 바와 같이 국제 정치경제 측면에서 정확히 나타난다. 공화당이건 민주당이건, 즉 부시던 켈리던 간에 이들은 모두 미국의 가진 자, 즉 자본가를 위한 정책을 수행한다는 것이다. 작은 (Little) 부시는 큰 (Big) 부시와 레이건이 했던 것처럼 군사-석유 자본가의 이익을 위해. 켈리는 클린턴처럼 금융과 IT 자본가를 위해.
그럼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 우리 언론이 말하는 보수와 진보의 의미는 어떤 의미인가 확인해야 한다. 미국 내의 진보와 보수의 의미인가? 아니면 국제 정치경제적 측면에서의 진보와 보수의 의미인가? 전자의 경우를 들어 진보와 보수의 의미라면, 그들은 공간적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는 미숙아로, 그들 스스로 우리 대한민국의 언론과 언론인이 아니라 미국의 언론과 언론이임을 주장하는 것과 같다. 그리고, 연결하려고 해도 연결이 되지 않겠지만, 공간적 차이를 느끼지 못하고, 미국의 진보와 보수와 우리의 진보와 보수 사이에 ‘정책적’ 측면에서 단일성과 주장하는 것은 과거 ‘내선일체’를 부르짖으면 조선과 일본의 공간적 차이를 느끼지 못하던 일제하의 매판언론과 동일하다. 후자의 경우를 들어 진보와 보수의 의미라면, 그들은 질감적 차이를 느끼지 못하는 미숙아로, 그들 스스로 총을 든 강도와 칼을 든 강도를 ‘강도’가 아니라 빵과 우유를 든 ‘자선가’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즉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지 못하는 것과 같다.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지 못할 정도의 공간적, 질감적 개념을 모르는 언론과 언론인들을 우리는 과연 어떻게 정의해야 하는가. 공간적, 질감적이란 말을 다시 재정의 해보면, 한국을 알래스카나 하와이처럼 미국의 한 주로 생각하고, 본인들이 기득권을 가진 백인이라고 생각하는 것과 같다는 의미이다.
역사가 평가 한다.
우리 세대가 지나면, 후세는, 아닌 역사는 우리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북핵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1993년 핵무기로 무장한 첨단 전투기를 수십 대씩 우리 인근 해에 출동시켰던 클린턴 정부와 핵벙커 미사일을 개발해 북을 정밀 폭격하겠다고 호언장담하는 부시 정부를 미국식 진보와 보수의 문제로 바라보는 언론과 언론인을, 역사는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만에 하나 단 한발의 핵폭탄이 터진다면, 그리고 그것이 빌미가 되어 한반도에서 전쟁이 벌어지고, 한반도의 우리 민족은 영원히 지구상에서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상황에서도 미국의 정책을 미국식 보수와 진보의 문제로 바라보는 언론과 언론인을, 역사는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이런 상황에서도 우리 민족의 운명을 우리 스스로 결정할 수 없는 가장 무능하고 비굴하고 순간을 미국식 진보와 보수의 문제로 바라보는 우리 언론과 언론인들을, 역사는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이런 상황인데도 우리의 ‘경제권’과 정치권(친미를 넘어 숭미에 가까운), 외교권(우리 청년의 목숨을 미국의 이익을 위해 파병하는), 군사권(SOFA에 메인), 문화권(거의 미국 문화 일색인), 교육권(유치원부터 우리의 모국어인 한글보다 영어 먼저 배우고, 배우려는)을 하나 둘 미국에 빼앗기는 현실을 미국식 보수와 진보의 문제로 바라보는 우리 언론과 언론인들을, 역사는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위협받고 있는 우리나라와 민족의 자주권과 생존권을 미국식 보수와 진보의 문제로 바라보는 사대주의적인 우리 언론과 언론인을, 역사는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아니! 우리는 현재 어떻게 그들을 평가해야 할 것인가!
정말 슬프고 애통할 일이다.
(2004/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