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아 만들기 2>

우정을 위한 우정

 

글쓴이 이문근(전북대학교 교수 전자정보공학부)

우정이라는 이름으로
동질성을 강요하는 현실.
이 현실은
사람을 가르고
세상을 가르고
파탄된 정신과 의식을 강요한다.

1. 회귀 본능

연어나 장어의 공통점중의 하나는 회귀성이다. 강이나 호수의 상류에서 태어나 바다로 나갔다가 다시 상류로 되돌아오는 회귀성. 그리고 자신의 회귀성이 다시 대를 이어 반복하는 유전성. 우리 인간도 자세히 살펴보면 이런 회귀성이 강한 동물임에 틀림 없다. 고향에 있는 사람들은 잘 모르겠지만, 고향을 떠나 사는 사람들은 고향의 소중함을 안다. 항상 의식과 심정의 저 깊은 곳에 남아 꿈틀거리고 있는 고향과 그 곳에 살고 있는 보고 싶은 사람들. 아마도 본능적인 회귀성과 사회적인 회귀성이 복합적으로 구성된 인간의 회귀성은 어떤 동물보다도 강할 것이다. 그런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해마다 연말이 되면 고향을 떠났던 중학교 친구들이 하나둘 모여든다. 서울로 간 친구, 부산으로 간 친구, 미국으로 간 친구, 스페인으로 간 친구, … 그런데 이런 친구들이 모이다보면, 만나는 장소도 꼭, ‘상류를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들처럼, 중학교가 있던 평화동에서 모이는 경우가 많아진다. 이렇게 연말을 보내고 나면 다시 연초 바다를 향해 떠나는 부화된 새끼 연어처럼, 재충전된 정서와 의식으로 다시 세상과 삶에 뛰어들기 위해 각자의 생활로 되돌아간다. 이런 시간을 지내고 나면, 항상 ‘친구란 무엇인가?’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그리고 이런 자리에서 아직 만날 수 없는 옛날 그 친구들이 생각난다. 힘이 들어서, ‘쪽’ 팔려서, 귀찮아서, 자존심이 상해서, 역겨워서, …, 다양한 이유 때문에 만나기를 회피하거나 만날 수 없는 친구들. 사춘기 시절의 우정을 생각하며, 이런 친구들 중 정말 보고 싶었던 한 친구의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2. 친구 이씨

2004년 12월 말경, 중학교 소모임이 있기 전, 한해를 보내며 중학교 친구가 보고 싶어 서울에 다녀왔다. 그 친구는 몇 년 전, 가족들과 함께 야밤에(!) 전주를 떠나 서울로 올라간 후 한동안 소식이 없다가 최근에 다시 근황을 알게 된 친구다. 친구 이름은 이XX(이하 이씨)이다.

이씨를 만난 것은 중학교 2학년 때였다(담임은 지난 호에 밝혔던 X곤조). 같은 반에는 1학년 때 같은 반 친구들이 약 1/5정도 되었다. 그 이유는 학년별 급수가 5반이었고, 학년이 올라가면서 분반 원칙을 확률적으로 각반마다 약 1/5씩 나누어 섞어버리는 방식을 취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1/5을 제외한 나머지는 안면은 있지만 대부분 생소한 친구들이었다. 특히 같은 층에 있었던 1, 2, 3반 친구들은 조금 안면이 있긴 했지만, 윗층에 있었던 4, 5반 친구들은 대부분 생소한 친구들이었다. 이런 생소한 친구들 중 5반 출신인 이씨가 내 짝궁이 되었다. 나는 63번, 이씨는 62번.

나는 ‘메기’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까맣고 바짝 말라 있었던 반면, 이씨는 창백할 정도라 하얀 얼굴에 팔이 무척 길고 말이 없고 조용하던 친구였다. 어딘지 모르게 과묵하고 침착한 그가 맘에 들었다. 처음 우리는 대충 통성명을 하고 조용히 며칠을 보냈다. 이 며칠은 일종의 탐색전 같이 서로에게 호감을 보이며 같은 공통분모가 무엇인지를 생각하면서 유사점들을 극대화하려고 노력하는 시간과도 같았다. 이 과정에서 이씨가 쉬는 시간에 시간이 날 때마다 가방에서 어떤 책을 꺼내 읽곤 하는 것을 관찰했다. 쉬는 시간마다 귀가 멍멍할 정도로 난리를 치며 뛰어 노는 다른 친구들 속에서 조용히 책을 읽고 있는 이씨는 다른 질감과 색감과 가진 모습의 친구였다. 다른 친구들의 일상생활과 동떨어진, 초월한 듯한 모습으로 책만 보는 친구. 돌이켜보면 대부분의 중학교 1, 2학년 학생들은 정말 천방지축 XX 안 깐 돼지처럼 정말 분주하기 짝이 없던 시절이었다. 주체할 수 없는 상상력을 바탕으로 끊임없는 시도와 실패 속에 하루하루를 온통 뒤죽박죽으로 보내는 전형적인 개구쟁이들이었다. 그런데 이씨는 주위 환경에 무관하게 책만 보고 있었다. 책의 내용이 세로로 기술되어 있고 쪽수의 방향도 왼쪽에서 오른쪽 방향이 아니라, 오른쪽에서 왼쪽 방향인걸 보면, 분명 교과서라든가 전과라든가 하는 학습용이 아니며, 분명 어른들이 읽는 책, 소설이나 수필 같은 책임에 분명했다. 우리 같은 나이에 이런 수준의 책을 읽는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다. 많은 학생들은 1학년 동안 수업 시간을 제외하고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놀 궁리만 했었다. 아니 수업 시간조차 우리는 책상 밑에서 무언가를 하고 놀았다. 총의 종류만 해도, 새총, 고무줄총, 화약총, 물총, 딱총, 우산대로 만든 장총, 자전거 바큇살 보트로 만든 권총 등등. 각각의 총의 종류에 따라 총알도 각양각색이었다. 다른 종류의 놀이는 이루 말할 수도 없다. 그런데 그런 친구들 속에 나타난 내 짝꿍 이씨는 전혀 다른 세계의 친구였다. 하지만 조용하고 과묵하지만 어딘가 모르게 지적이며 선하게 생긴 이씨의 내면세계에 나와 동질의 어떤 것이 존재함을 발견하기까지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3. 친구 김포

김포는 1학년 때 우리 반이었다. 중학교를 입학했을 때, 김포는 주위 친구들을 모든 면에서 위압했다. 왜냐하면 입학생들 중에서 김포가 제일 등치가 좋았기 때문이다. 키며 근육이며, 특히 ‘이빨’(?!)은 대단했다. 그는 항상 자랑거리가 많았다. 초등학교 시절 태권도 국가대표로 일본까지 다녀온 고수라고 이야기했다. 정말 그의 주먹은 거의 우리 주먹의 두배는 되어 보였다. 그리고 주먹에는 수도단련 흔적으로 보이는 괭이(!)들이 박혀 있었다. 그리고 쉬는 시간만 되면 이놈저놈 붙잡고 팔씨름 하자고 판을 벌렸다. 열이면 열, 백이면 백, 모두 지 승리였다. 하지만 이런 외형적인 구술적인 김포에게 부족한 것이 하나 있었으니 그건 ‘깡다구’였다. 척박한 환경에서 생존하기 위한 깡다구.

우리 1학년 담임선생은 진XX 선생님이었다. 그분은 유할 뿐만 아니라 성품이 고아 조회 때나 수업 때나 학생들에게 야단을 치거나 때리는 경우가 없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학교 초기에 다른 선생들은 학생들을 휘어잡기 위해 필요 이상의 체벌을 많이 감행했다. 체벌은 이제 갓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입학한 14살 어린 학생들에게는 폭력처럼 무서웠다. 특히 1학년 4반 담임선생인 영어 선생과 1학년 5반 담임선생인 수학 선생의 체벌은 정말 장난이 아니었다. 예를 들어 영어 선생의 경우를 들어보면 이렇다. 영어 선생은 어깨가 꾸부정하고 고개를 숙이고 다니시는 것이 특징이었다. 항간에 들리는 소문으로는 이 선생이 중/고등학교 때 권투를 해서 이런 자세를 가지게 되었다는 거였다. 그게 사실이라면 우리는 단 한방에 갈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이런 전력이 있다고 하는 선생은 학생들을 바라보거나 학생들에게 말 할 때는 이런 꾸부정한 어깨에 고개를 숙인 자세에서 인상을 쓰며 고개를 약간 들어 바라보거나 말하곤 했다. 이럴 때면 이마에는 주름살이 심하게 패이고 눈은 한판 쌈을 하듯 째려보곤 했다. 거기에 도수가 높은 안경까지 쓰고 있으니 그 모습은 사람을 거의 권투할 때 상대방에게 린치를 가하기 직전의 공격 자세와 비슷했다. 이런 모습 때문이었는지는 몰라도 영어 수업 시간에는 교실에서 거의 빠스락거리는 소리조차 나지 않았다. 또 이 선생이 내주는 숙제를 해오지 않는 학생은 거의 없었다. 만약 그런 학생이 있다면 그 학생은 선생의 이런 분위기를 실제 체험할 수 있는 아주 잔인한 체벌을 경험해야 했는데 그 결과는 거의 초죽음과 같은 것이었다. 이 영어 선생의 행동과 체벌에 대한 특징 중의 하나는 이 선생이 항상 바닥 청소할 때 쓰는 걸레자루같은 몽둥이를 가지고 다녔다는 것이다. 더 정확히 표현하면 가지고 다닌 것이 아니라 거의 바닥에 질질 끌고 다녔다고 볼 수 있다. 수업 중에도 이 몽둥이를 교단이나 바닥에 질질 끌고 다니거나, 교단, 교탁 및 교실 벽에 탁탁 부딪히며 나는 소리가 얼마나 사람의 기를 죽이고 피 마르게 하는지 처음에는 알지 못했다. 처음 선생이 내준 숙제를 해오지 않은 학생들이 하나둘 생기고 급기야는 이 선생의 체벌이 시작되었을 때 그 정도가 얼마나 심각한지 온몸으로 체험하게 되었다. 즉 이 선생의 체벌이 거의 동물적인 수준이었다는 것을 뼈저리게 체험하게 되었다.

이 선생은 체벌 때 다른 선생들의 체벌과는 다른 특징적인 두 가지의 독특한 버릇을 보였다. 그 하나는 제 1단계에서 학생을 한명씩 앞으로 불러 세워 학생의 눈높이에서 오른손의 검지로 자신의 안경 코 부위를 자꾸 치켜세우면서 침이 교실의 맨 뒤에서 보일 정도로 학생의 얼굴에 튀여 가며 일단 혼을 내는 것이고, 제 2단계에서 학생을 체벌할 때 꼭 학생의 다리를 칠판의 아래 돌출부위에 얹히고 손을 교단이나 교실 바닥을 짚게해서 사람을 완전히 거꾸로 매달아 놓고 때린다는 거였다. 1단계는 꼭 사람의 혼을 빼는 최면술보다 더 고단수의 압박 작전이었다. 이 상황이 이해가 잘 안되면 호랑이가 앞에서 발톱을 내갈기며 학생 얼굴을 온통 침의 파편으로 쳐바르며 포효를 한다고 생각하면 이해가 된다. 이 과정에서 그 독기가 시퍼런 눈과 지저분한 입에서 튀어나오는 침을 조금이라도 피하려고 하면 그 소문으로만 들었던 권투실력이 나왔다. 어퍼컷, 양쪽으로 싸다귀 때리기, 위에서 머리 주먹으로 찍어 내리기, 이마에 정권 때리기 등등 완전히 초죽음이 되었다. 이런 1단계를 거치고 나면 2단계는 이런 초죽음을 마무리하는, 죽음 그 자체였다. 때릴 때는 정말 인정사정 없었다. 45도 각도로 사람을 칠판에서 바닥으로 거꾸로 뻗게 해놓고 때릴 때는 바람소리가 ‘휭’ 날 정도의 속도와 맞는 순간 ‘퍽’하는 소리가 허벅지의 근육을 파열시킬 정도였다. 아마 이렇게 맞아보지 않은 사람들은 모를 거다. 그 매맞음의 공포를. 아니 매 맞기 전의 공포를. 대가 약한 친구들은 정말 맞기 전에 달달달 떠는 것은 기본이고, 오줌이나 똥을 저리는 친구들도 있었다. 이런 체벌과 사태를 경험한 후에는 어지간한 배짱 가지고는 숙제를 해오지 않는 학생들이 없었다. 그리고 단어나 영어대화 암기 숙제를 내주고 그것을 모두 같이 확인 하는 날에는 합창단을 지휘하는 모습으로 온갖 표정을 지으며 몽둥이로 지휘를 했고, 학생들은 혼신의 노력으로 최선을 대해 노래를 합창하는 학생처럼 단어와 문장을 외워댔다. 선생은 항상 강조 했다. “영어는 무조건 외우는 것 밖에 없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리고 우리는 무조건 외우기 위한 전제 조건이 죽음에 가까운 체벌임을 온몸으로 확인하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반에서 영어 선생에게 처음 체벌을 당한 학생 중에 하나는 김포였다. 김포는 이미 스스로 그리고 소문에 의해 그 ‘떡대’나 전력이 막강하다고 알려지고 있었다. 그러나 순간 영어 선생의 체벌에 걸려들어 박살이 나는 김포를 보며 어디가 야무진 곳이 없이 무우처럼 무딘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체벌 1단계 침튀기는 훈계 단계에서 코피가 터지는 것은 둘째치고라도 그 용서를 애원하는 처절한 목소리와 비참한 굽실거림, 체벌 2단계에서 몽둥이가 내려칠 때마다 바닥을 기며 교실이 떠내려가도록 울부짓는 그 허우대, 교단에서 책상까지 걸어가면서 제대로 걷지 못하고 푹푹 쓰러지는 나약함, 그리고 맞고 난 후 군데군데 피가 맺히고 근육이 파열된 가래떡처럼 부어오른 허벅지를 주위 친구들에 부끄러운지도 모르고 자랑하는 그 위선(!).

반면 나는 이런 유형의 체벌에 대한 독특한 대응 전략을 수립했다. 첫째, 말을 하지 말 것. 만약 꼭 말을 해야 할 상황이 발생하면 간단하게 몇 마디로 끝낼 것. 둘째, 체벌에 관한한 무조건 맞을 것. 맞지 않기 위해서, 또는 덜 맞기 위해서 절대 어떠한 변명이나 반항도 하지 말 것. 셋째, 맞을 땐 절대 약한 모습을 보이지 말 것. 매를 맞을 때 흐트러지거나, 신음소리를 내거나, 몸을 비틀거나 비비꼬지 말 것. 특히 눈동자 하나라고 감정적으로 흔들리지 말 것. 아무리 아파도 아픈 티를 조금이라도 내지 말 것. 넷째, 맞고 난 다음 쩨쩨하게 절대 뒷소리하지 말 것. 그리고 가장 중요한 다섯째는 어떤 무시무시한 체벌이라 할지라도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체벌 때문에 하지 못하다는 인상을 절대 주지 말 것. 즉 무조건 맞을 것. 그리고 하고 싶은 것은 절대 포기하지 말 것.

이런 상황에서 이런 전략을 통해 내가 노리는 반응은 아무리 때려도 꿈쩍하지 않는 학생을 보면서 선생과 반 친구들이 느낄 수밖에 없는 그 멍하고 아련한 감각과 감정과 이성의 공동화 및 괴리감 같은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선생에게는 때리면 때릴수록 어린 학생의 가슴 속에서 어떤 형태로 들끓고 있을지 모르는 분노와 증오와 보복과 냉혹함을 두려워해야 할 것만 같은, 반면 친구들에게는 거꾸로 매달린 채 허벅지에 몽둥이가 떨어질 때마다 자신들이 맞았을 때 느낄 수밖에 없는 그 무시무시한 감각과 감정을 다시 되살려 느껴야 하는 대리 반응에 대한 자학적 공포의식을 두려워해야 할 것만 같은 그런 반응이었는지도 모른다.

결과 이 전략은 매우 효과적이었다. 첫째, 이런 전략이 적용되는 피비린내 나는 과정 속에서 나의 깡다구와 독기는 김포의 기를 죽이기에 충분했고, 둘째 선생은 이미 나를 거의 포기하게 됨으로 얻어지게 되는 그 누구도 부럽지 않은 체벌로부터의 자유였다.

4. 친구가 되기 위한 공통분모

이런 김포가 2학년 때 같은 반이 되었다. 수업 첫날 키순으로 앉다보니 김포는 등치가 커서 자연히 나와 이씨 뒷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김포는 나에게는 장난을 걸지 못하고, 점잖게 말이 없고 순해 보이는 이씨의 뒷통수를 가격하며 장난을 걸기 시작했다. 머리를 때리며, ‘야, 너 뭐하냐?’ ‘야, 너 무슨 책 읽냐?’ 하며, ‘야…’로 시작해서, ‘…냐?’ 끝이 나는 김포의 장난이 정도를 넘어서는 것 같았는데도, 꿈쩍하지 않고 말한마디 대꾸하지 않는 이씨는 점점 김포의 의아심과 궁금증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담임선생인 수학선생과 영어선생(정말 믿을 수 없는 이야기지만, 삼년동안 같은 영어, 수학 선생이었다!)에 의해 자행되는 그 피 말리며 뼈를 깎는 체벌에 이씨가 거의 나와 유사한 방법을 사용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무조건 맞을 것, 절대 약한 모습 보이지 말 것, 뒷말 하지 말 것, 그리고 어떤 체벌이 있다하더라도 하고 싶은 건 꼭 할 것. 이런 이씨의 전략이 조금씩 효과가 있음은 김포가 이씨에 대한 장난의 빈도수가 적어짐을 통해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몇 달이 되지 않아 이씨에 대한 김포의 그런 장난은 아예 엄두도 내지 못하게 되었다. 이런 과정에 내가 이씨에게서 발견한 동질감이 그와 나를 단짝으로 만들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우리 둘이가 어느 누구도 상종하지 않는다는 곱슬머리와 옥니와 주걱턱을 모두 가지고 있었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이렇게 친해진 이씨와 나는 거의 매일 같이 붙어 다녔다. 친해지면서 나는 이씨가 아주 내성적이면서 그런 냉혹한 성격을 가질 수밖에 없는 이유를 발견하게 되었다. 그 이유는 그의 가정환경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교육 공무원인데 아주 엄격하다는 사실, 그의 어머니는 친어머니가 아니라는 사실, 친어머니는 3살 터울인 동생을 낳고 돌아가셨다는 사실, 현재 어머니는 그 뒤에 아버지와 재혼 했으며 새 동생이 둘이 있다는 사실 등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씨는 그의 어머니와 아버지가 그와 그의 동생을 무척 미워한다고 생각하며, 그러기 때문에 본인은 친동생에 대한 책임이 막중하다고 생각한다는 사실까지 알게 되었다. 우리 집에서는 가끔 약주를 드시고 집에 와서 어머니와 다투시는 아버지의 불화와 막내인 나까지 9남매를 키우시느라 갈수록 어려워지는 경제 말고는 그리 고민할 것이 없이 자란 나로서는 무척 충격적인 내용이었다. 이씨가 나의 짝꿍이 되었을 때 보여주었던 과묵함과 조용함의 배후에는 이런 아프고, 슬프고, 외로운 사연이 숨어 있었다.

이씨와의 우정은 그의 이런 가정환경에 대한 이해를 기반으로 시작되었다. 학교를 갈 때도 항상 내가 살던 중노송동에서 이씨가 살던 서노송동을 거쳐 학교가 있던 평화동까지 걸어서 다녔다. 그의 방은 골목 담 옆에 있어서 밖에서 부르기도 편했다. 혹시나 이씨의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들킬까봐 아주 조심스럽게 길가로 난 창문을 두드리거나 이름을 재빨리 부르고 난 다음 골목 저편에서 이씨를 기다리곤 했었다. 하교길에도 항상 서노송동을 거쳐 중노송동으로 가곤 했다. 물론 다른 친구들도 같이 다녔지만.

이렇게 친구들과 같이 어울리면서 서서히 집단의식이 강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우정과 의리를 강조하는 개념도 생기기 시작했다. 담임선생을 비롯한 선생들의 독선과 폭력이 강해지면서 학업에 대한 관심이 떨어지는 반면, 친구들 사이의 우정과 의리에 대한 의식과 실천은 상대적으로 강해지기 시작했다. 이런 과정에서 이씨는 조용하고 어두운 모습에서 벗어나, 친구들과 함께 말과 웃음도 찾으며, 조금씩 밝아지고 있었다.

5. 우정 와해 작전

이러던 중, 이씨의 학업이 조금씩 떨어지는 것을 확인한 이씨의 아버지가 학교를 방문해 X곤조와 교육공무원으로서 (이씨의 아버지는 교육공무원이었기 때문에 이건 매우 중요한 사실이다!) 상담을 하게 되었던 모양이었다. X곤조는 이씨의 성적저하 원인이 본인의 독선과 폭력 때문에 형성된 학생들 사이의 반감 때문이 아니고 친구인 나 때문이라고 이씨의 아버지에게 말했으며, X곤조는 이씨의 아버지에게 이씨가 나와는 사귀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는 사실을 이씨와 이씨의 아버지 사이의 불화 중에 이씨의 아버지가 이씨에게 X곤조가 그렇게 이야기 했다고 고백한 내용을 이씨가 나에게 이야기해서 나중에 알게 되었던 내용이다. 아, 이런 이야기를 들었던 그 당시의 처참함은 정말 형용할 수가 없다. 담임으로부터 버림받은 배신감. 이런 감정은 폭력보다도 더 무서운 인간성에 대한 파괴였다. 아마도 내가 X곤조에 대한 선생으로서의 최소한의 믿음마저도 철저히 깨진 건 그 때가 아니었나 생각한다. 그리고 이씨의 집을 방문할 때 가끔 대문에서 기다리다가 나를 보면 노골적으로 이씨가 ‘나 때문에 공부를 하지 않는다’, 그래서 ‘집에 오지 마라’고 하는 이씨 아버지의 훈계와 더불어 이씨 어머니의 차가운 눈빛과 말투는 등을 오싹오싹하는 정도를 넘어서 15살 어린 소년의 가슴에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깊게 남기고 말았다. 하지만 친구이기 때문에 이씨가 당하는(?) 아픔과 슬픔과 외로움을 나도 이렇게 같이 참고 견디고 이겨낼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X곤조는 이런 사건을 통해서 이런 부류의 학생들의 학업증진과 향상을 위해서 비밀과외를 주관 및 주선하였고 (영어 선생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씨도 결국 그 비밀과외를 받았었다는 사실을 중학교를 졸업한 후에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과외 중에 받은 문제풀이의 문제가 중간/학기말 시험에 일부 그대로 나왔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과외의 결과 이씨의 성적은 일부 과목에서 향상되었다는 것과 그것을 이씨의 아버지와 X곤조가 기뻐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이씨 아버지의 기쁨과 X곤조의 기쁨이 크면 클수록 난 이씨의 더욱 나쁜 친구임이 입증되는 결과가 되었고, 이씨는 결국 나와 조금씩 멀어져 나중에 3개월 이상 선생들의 체벌에 대한 전략과 같은 비슷한 전략을 서로에게 적용하게 되고 말았다. 말하지 말 것, 약한 모습을 보이지 말 것, 뒷말하지 말 것, 그리고 모른 척 외면 할 것.

이렇게 3개월을 보내면서 서로에게 거의 눈길조차 주지 않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그러던 중 조금씩 오르던 이씨의 성적이 다시 떨어지고 학업에 관심을 조금씩 잃어가는 이씨의 모습에서 그가 가정에서 얼마나 힘들게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와 갈등하고 고민하고 있었는지를 알 수 있었다. 결국 나는 옆에서 그의 아픔과 슬픔과 외로움을 같이 나누기 위해 화해를 하고 그를 더욱 이해하게 되었다. 즉 나는 X곤조가 그의 아버지에게 친구 때문에 성적이 떨어진다는 이유를 들어 친구들로부터 이씨를 더욱더 고립하게 만들었던 그의 아버지와 X곤조 때문에 처절하게 친구를 외면할 수밖에 없었던 그의 복잡한 상황과 심정을 더욱 이해하게 되었다.

이런 과정을 거친 후 이씨와 나는 둘도 없는 친구가 되고 말았다. 곱슬머리와 옥니와 주걱턱을 가진 두 ‘사나이’는 이제 겁나는 것이 없었다. (지난 호에 이야기 했던) 담임선생의 급훈처럼 무엇이든 ‘하면 된다’ 였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서로 다른 학교로 진학을 하고, 또 내가 멀리 떠나면서 조금씩 소원해지기는 했지만, 그의 부모 때문에 고1 때 가출해서 서울에 있는 나이트클럽에서 ‘뽀이’로 일하는 이씨를 찾아 같이 전주에 내려온 일이며, 고향을 떠나 15년 만에 돌아온 나에게 사업 때문에 힘들어 말 한마디 못하고 가족들과 함께 야밤에(!) 서울로 떠난 후, 힘들게 부인과 함께 포장마차 하는 그를 찾아 가서 눈물 바람으로 소주 한잔 나누던 일이며, 그리고 그 이 후 최근 서울에서 그 동안 몸이 가루가 되도록 일을 하고 그 결실이 좋아 이젠 안정된 사업을 가지게 되었고 지금도 그 때의 초심으로 열심히 살아가고 있었다는 그를 다시 만나 서로 손을 잡고 축하하고 격려했던 일이며, 아직도 끊어지지 않는 인연을 가지고 있다. 그를 생각하면 항상, 중학교 2학년 시절, 그가 보던 소설을 나에게 설명하며 꼭 ‘소설처럼 살고 싶다’고 나에게 이야기하던 그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6. ‘좋은’ 것을 위한 인간소외

친구인 이씨를 생각하면서 아직도 어린 시절의 그 설레임이 다시 되살아난다. 친어머니가 보고 싶어 외로움에 번민하는 친구의 슬픔과 아픔, 따뜻한 체온이 그리울 정도로 황량하게 고립된 친구의 내면세계, 하지만 끊임없이 꿈과 희망을 찾아 방황하는 어린 영혼. 하지만 그의 부모님과 끊임없이 갈등해야하는 운명.

특히 나와의 우정이라는 관계에서 돌이켜 보면, 일부 선생들과 학부모들은 학생들과 자식들의 우정을 서로 친한 친구간의 순수한 관계로 이해하지 않고, 예를 들면 공무원이나 교사와 같이 부모님의 직업이 유사한 친구끼리의 모임처럼, 선생들과 학부모의 사회적 관계를 학생들 간의 관계로 그대로 규정하려는 의도가 강했다고 볼 수 있다. 또, 이런 관계 외에도, 공부 잘하는 친구끼리의 모임처럼 선생들과 학부모들은 그들이 좋아하는 같은 성질의 학생끼리의 관계만을 인정하려는 의도가 강했다고 볼 수 있다. 당연히 이 관점에서 본다면 나와 이씨처럼 선생들이 다루기 어려운 친구끼리의 모임은 인정할 수는 없지만 안할 수도 없는 암담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단일 성질을 요구하는 부류의 무리들, 그럼으로 같은 성질을 가지게 되는 인간들. 그리고 세대가 바뀌면서도 그런 성질을 그대로 세습시키려는 끊임없는 욕망과 욕구. 하지만 이런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 강요된 획일성은 환경이 바뀌게 되면 한순간에 무너진다는 것을 우리는 자연과 사회를 통해서 확인하고 배우지 않았는가. 자연과 사회의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서 인간은 아주 다양한 유전적 성질을 가지고 있어야만 했다. 그런 원칙은 지금 우리 사회와 환경에서도 동일하다고 생각한다. 학생들과 자녀들이 성장과정에서 배워야하는 것 중의 하나는 각 성장시기에 할 수 있는 다양한 경험을 체험하고 그 안에서 적응하기 위한 자신의 고유한 능력을 개발하고 발전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좋게’ 태어나서 ‘좋은’ 친구들과 함께 ‘좋은’ 성적으로 ‘좋은’ 학교에 가서 ‘좋은’ 직장을 구하고 ‘좋은’ 배우자와 ‘좋은’ 가정을 이루어서 ‘좋은’ 자녀를 두고 ‘좋은’ 인생을 사는 것이 삶의 궁극적인 목적이라면, 인생의 그 긴 과정 중에 만의 하나 좋지 않은 경우가 발생되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결과만 좋게? 그런데 그 좋지 않음으로 인해 그 다음 더욱 더 좋지 않게 되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리고 그 다음은?

얼마 전 제목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부자가 되려거든 부자들을 만나라’ 라는 책의 제목을 보면서 속으로 웃은 적이 있었다. 왜냐하면, 그 부자들은 부자가 되고 하는 사람들이 현재 부자가 아니어서 그리고 앞으로 부자가 될 확률이 거의 없기 때문에 그들은 거의 만나지 않을 것임을 체험적으로 알 수 있기 때문이었다.

동기 모임에서 ‘배울 것이 없는 친구는 사귀지 않는다’는 동창을 보면서 속으로 웃은 적이 있었다. 왜냐하면, 인간은 누구에게나 배울 점이 있다는 사실을 아직 깨닫지 못한 그 동창의 오만함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과정 속에서 인연을 맺지 않고 결과와 형식만으로 만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그 배후에는 우정이든 사랑이든 나에게 ‘좋은’ 관계만을 일방적으로 설정하고 유지해야 한다는 기성세대의 가치관과 세계관이 깊이 깔려있다. 결국 인간을 통해 인간의 삶이 풍요로워져야 하고 자유로워져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인간이 인간에 의해 인간 스스로를 소외시켜버리는 모순을 낳고 말았다.

이씨는 이제 두 아들의 아버지가 되어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이해하며 긍정적으로 살아간다고 했다. 아버지하고는 아직도 사대가 맞지 않는 부분이 많지만 아버지와 이씨는 이제 서로를 인정하고 있으며, 어머니는 이제 이씨를 가장 많이 이해하는 가족이 되었다고 웃음으로 말했다.

그렇다. 바로 이것이다! 끊임없는 갈등과 고민과 대화와 그리고 이해의 세월 속에서 다양성을 체험하고 인간의 성숙한 삶을 만들어가는 것! 나와 이씨가 원했던 것은 이러한 다원한 환경 하에서 살아가는 다양한 인간을 인정하고 그들 사이에 (비록 스승과 제자, 부모와 자식 간일지라도) 발생할 수 있는 어떤 갈등과 모순을 서로 간의 이해를 전재로 한 지속적인 대화와 관심이었으며, 비로소 학생이 건강한 가정과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성장할 수 있는 참교육이 아니었던가! 우리가 원했던 것은 일부 선생들에 의해 자행된, 그리고 너무나 큰 상처가 되어버린, 주먹과 몽둥이와 협박과 폭력을 통한 일방적이고 편파적이며 파쇼적인 교육이 절대 아니었다. 아직도 돌이켜 바라는 것이 있다면 몸과 마음과 의식과 정신에 상처를 주지 않는, 학생을 인간으로 대접하는 인간다운 참교육이었다.

(2005/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