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장을 허문다고 ‘열린학교’가 되는가?!
글쓴이 이문근 (전북대, 컴퓨터과학과 교수)

 
2004년 3월 큰딸이 서학동에 있는 전주교대부설초등학교에 입학을 했다. 입학식, 운동회, 또는 하교시 학교 안에서 느끼는 학교의 분위기는 밖에서 보는 것과는 다르게 매우 산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까지 지난 10년간 흑석골에 살았던 필자는 이 초등학교를 볼 때마나 낮은 건물, 넓은 운동장, 드높은 소나무를 보면서 이 학교의 역사와 전통을 느낄 수가 있었다. 특히 봄이 되면 담장에 피는 장미꽃은 초등학교의 낭만적인 분위기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이미지 같았다. 그리고 2004년 봄부터 담장이 철거되기 시작하고 담장이 있던 자리는 화단처럼 아담하고 산뜻하게 단장이 되고, 안에 있던 학교의 모습은 더욱 선명하게 밖으로 드러났다. 그 만큼 학교의 역사와 전통도 더욱 선명하게 부각되는 듯 했다.

하지만 막상 학교 안에서 아이들의 생활 속에서 보호자의 입장으로서 느끼는 학교의 모습은 밖에서 보는 그런 역사와 전통, 그리고 선명하고 산뜻한 학교의 모습과는 너무도 동떨어진 것이었다. 그 이유는 학교 운동장 앞에 있는 4차로에서 질주하는 자동차의 소음과 형상 및 매연 때문이었으며, 담이 없기 때문에 아무런 장애 없이 운동장으로 그 소음과 형상과 매연이 그대로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특히 소음은 운동장에서 체육시간을 담당하는 선생님의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을 정도인 것을 여러 번 목격하기도 했다.

아이들의 보호자의 입장에서 보면 담장이 없기 때문에 발생되는 문제들 중, 이런 자동차의 소음, 모습, 매연보다 더욱 신경이 쓰인 것은 아이들의 안전이었다. 운동장이 아무런 벽이 없이 도로와 인접해 있기 때문에, 만에 하나 공놀이를 하다가 공이 도로로 넘어가는 상황이 된다면, 그래서 만에 하나 우리 아이들이 그 도로에서 그 공을 찾으러 가는 상황이 된다면, 만에 하나 주위가 산만한 아이들이 차에 신경을 쓰지 않는 상황이 된다면, …. 생각만 해도 정신이 아찔한 상황이었다. 나아가 최근에 발생한 성폭력 등과 같은 초등학생에 대한 안전사고 생각한다면 더욱 끔찍한 일이었다. 정말 생각해보면 학교 안에서 보던 학교의 모습은 밖에서 보는 것과는 하늘과 땅 차이임을 알게 되었다.

이후 필자는, 왜 학교의 담장을 없앴는지, 그 혜택이 무엇인지, 그 결정은 누가하고, 그 권한은 누가에게 있는지 등이 궁금해졌다. 그런데 이런 궁금한 점들은 우연한 기회에 자연스럽게 밝혀졌다.

2004년 가을에 전주교육대학교 총장과 식사를 같이 할 기회가 있었다. 자리가 무르익을 즈음해서 필자는 총장에게 학교 담장에 대한 의견을 물었고, 총장은 외국처럼 담장이 없는 학교를 만들기를 원해서 전북에서는 처음으로 전주교육대학교와 부설초등학교의 담장을 없앴고, 그래서 열린 학교, 주민과 같이 하는 학교를 만들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뒤를 이어 담장을 없애는 학교들을 보면서 자신의 철학을 입증하는 근거로서 매우 자부심을 느낀다고 했다.

어린 시절 놀 곳이 없어 집 근처에 있는 학교 담을 넘어 운동장에서 놀던 일과 학창시절 학교를 가기 위해 정문까지 담을 타고 돌거나, 가끔 학교 담 넘어 잡다한 짓을 하던 일들을 생각해보면 주민과 함께 하는 그리고 내외적으로 ‘열린학교’의 정신을 이해할 수 있지만, 그 근저에는 학생의 안전한 교육권을 체계적으로 이해하지 못하는 모방주의가 짙게 깔려 있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은, 특히 외국의 사례를 들면서, 저 푸른 초원 위에 담장 하나 없는 그림 같은 열린 학교를 강조하기도 했다.

필자는 청년기에 미국에서 약 15년을 산 적이 있다. 미국에서의 교육권은 외형적으로 담장으로 평가되지 않는다. 환경에 맞는 다양한 학교가 존재한다. 건물이 밀집된 시내 중심에 있는 학교는 다층건물이 학교다. 정문은 건물 입구이고 건물 내에 체육관이며 운동장이 있다. 연립주택이 밀집된 지역은 학교 건물과 운동장 및 시설들을 보호하기 위한 높은 담이 있다. 일반 어른도 쉽게 넘을 수 없는 담이다. 도로가에 있는 학교의 담은 소음을 차단하기 위해 일반담보다 2~3배가 높다. 시외에 있는 학교는 주로 담장이 없다. 하지만 꼭 담장이 없는 것은 아니다. 담장이 있는 학교도 다수 있다.

이런 환경에 맞는 학생의 교육권을 보호하기 위한 다양한 외적인 틀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그 내용이다. 미국에서는 담이 있든지 없든지 간에 등하교 및 학교에서 생활하는 시간에는 학생들이 불투명한 외부 환경 및 사람들과의 접촉을 허락하지 않는다. 학교버스를 이용하는 아이들도 안내하는 책임자도 있어 집에서 학교까지, 학교에서 집까지 정확히 안내를 해준다. 아이들을 보기 위해 학교를 방문하면 학교의 담당 책임자의 안내를 받아야 되며 방명록이 인적사항을 정확히 기록하고 입증해야 한다. 또 학생들이 운동장 또는 놀이터와 같이 학교 건물 밖에서 활동을 할 때에는 안전요원 및 경비원이 학생들의 안전을 담당한다. 담이 없다고 해서 모든 형식과 절차를 무시해도 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 사회가 근현대화를 거치면서 우리의 전통적인 가치와 양식은 일본과 미국에 의해 파괴되고 급속히 서구화 되어갔다. 정치‧경제‧사회‧문화‧교육 전반에서 기득권을 유지했던 상당수는 일본과 미국의 혜택을 누렸던 사람들이거나 그들의 후손들이었다. 초기 이들은 서구의 가치와 양식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고 받아들였다. 여기에는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서구 양식에 대한 선호경향과 사대주의가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러한 것들은 이후 군부독재와 함께 획일화되었다. 획일화된 가치와 양식은 다양성을 수용할 수 없었다.

색깔이 아름다운 이유는 색이 여러 가지이기 때문이며, 사람이 아름다운 이유는 서로 다른 인격체이기 때문이지 않을까? 이런 다양한 인격체를 길러내는 교육의 현장에서 담장의 유무로 판단되는 획일화된 가치, 즉 형식적인 ‘열린학교’를 강요해서는 안된다. 한 울타리라도 담장이 필요한 곳에는 담장을, 필요 없는 곳에는 화단을 설치할 수 있는 자율권과 선택권을 학교의 소속원들에게 민주적인 절차와 권한에 의해 스스로 부여해야 한다. 그리고 그 결정에 대한 정확하고 객관적인 검증과 평가가 투명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즉 절차와 내용에서의 ‘열린교육’, 즉 민주적인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런 환경에서 비로소 사물과 가치의 다양성을 수용할 수 있는 민주적인 인간이 배출될 수 있으며, 민주사회를 이룰 수 있는 초석이 마련된다고 생각한다. 
 
(2006/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