長씨와 金씨가 결혼하면 長金씨가 된다?
글쓴이 이문근(전북대 컴퓨터공학 교수)
 
 
최근 최고(崔高), 이박(李朴), 장김(長金) 등과 같은 새로운 姓을 자주 접하게 됩니다. 이러한 성들을 사용하는 사람들은 페미니즘 전문가인 ‘신정모라’님이 아래와 같이 주장하는 것처럼 가족의 민주화를 위한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부모 양성을 모두 쓰면 가족 의식이 민주적으로 변하고, 갈등 분위기가 조성되는 것을 피할 수가 있다. 엄마 성씨를 선택할 수 있는 사회가 되려면 먼저 법으로 양성쓰기를 법제화해야 옳다. 현재 민법 개정안은 거꾸로 되어 있다.” (대자보, 2004년 12월 22일)

즉 his-story(남성의 역사)에서 잃어버린 her-story(여성의 역사)를 찾아야 하는 것처럼 부계사회에서 자녀가 아버지의 姓을 따르던 ‘근대적’ 양식을 타파하고 아버지의 姓과 어머니의 姓을 같이 사용하여 가족의 민주화를 실현하자는 새로운 ‘미래적’ 가치의 표현 또는 제도화라는 겁니다. 필자는 가족의 민주화라는 가치 실현에는 절대적으로 동의하지만 이를 위해서 부모양성을 사용해야 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몇가지 ‘기술적’인 문제가 있음을 지적하고자 합니다.

조합과 우선순위의 문제

첫째 문제는 부모의 성중 어떤 성을 먼저 사용해야 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長씨와 金씨의 경우 長金씨인지 金長씨인지를 결정하는 문제입니다. 순서가 결정되면 그 다음 문제는 어떤 원칙으로 그 순서가 결정되었고, 그 순서가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가를 해결해야 합니다. 만약 순서가 중요성과 가치성의 우열 또는 고저를 의미한다면 부모양성의 사용방법이 그 목적을 위반하는 모순이 되고 맙니다. 즉 민주적이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부모양성의 등치성(等値性)과 동시성(同時性)이라는 등가치(等價値)를 표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문제는 매우 중요한 사실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 이상의 물리적 또는 추상적 존재를 3차원이라는 시공간 또는 의식에서 지칭시키기 위해서는 어떤 방향성(좌우, 우좌, 상하, 하상 등)을 가지더라도 순서라는 질서를 위배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즉 長金 또는 金長이라는 순서를 벗어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순서의 질서는 조합(permutation)이라는 법칙에 의해 결정됩니다. n개의 성을 나열하기 위한 방법은? 잘 아시는 거와 같이 n! 입니다.

그러면 이런 순서의 질서 또는 개념을 깨트릴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있습니다. 어떻게 할 수 있을까요? 그냥 만들어 주장하면 됩니다. 예를 들면, 새로운 성에 등치성이 성립되는 관계를 부여하면 됩니다. 예를 들면 ‘長 +金 = 金 +長’ 또는 ‘長 |金 = 金 |長’와 같이 ‘+’(plus)와 ‘|’(bar)와 같은 長과 金의 등치적 관계를 부여하면 순서의 개념이 없어집니다. 즉 어떻게 표현이 되어지거나 그 순서에는 의미가 없고 그 부여된 등치성과 동시성의 의미가 성립됩니다.

하지만 ‘長|金’이든지 ‘金|長’이든지 종이와 같은 2차원 공간 또는 그 공간에 나열된 개념을 체계화시킨 뇌 속의 지식체계에서 등치성과 동시성이 있든 없든 좌우방향 하에서 ‘長|金’에서는 長이 ‘金|長’에서는 金이 먼저 사용됨은 어쩔 수 없습니다.

그럼 이런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요? 간단합니다. 두 개념을 복합시킨 새로운 성을 고안해내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長+金’ 또는 ‘金|長’의 복합개념의 표현하기 위한 ‘姓’文字, 예를 들면 ‘X’(엑스)와 같은 글자를 고안해서 사용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방법은 수천년전 유목생활을 하던 부족들이 분족(分族) 또는 분가(分家)을 하면서 사용하던 방법입니다. 즉 현재의 고민은 이미 오래 전에 누군가에 의해 고민되어졌고 해결되어졌던 문제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고민의 결과물들, 즉 姓字들은 금석문이나 갑골문에 많이 남아 있습니다.

순열과 회귀성의 문제

둘째 문제는 부모양성 사용 범위를 어디까지 정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지금 당장은 자식이지만, 그 자식이 결혼을 해서 자식, 즉 손자(녀)를 낳으면, 자식의 부모성중 어떤 성을 손자(녀)에서 전해주어야 하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父 또는 母의 성만 손자(녀)에게 전해주게 된다면 이는 이미 양성사용의 목적이 1세대에 그치고 마는, 그리고 다시 父 또는 母성만을 사용해야하는 문제가 재발됩니다. 예를 들면 자녀인 長金씨가 李朴씨와 결혼을 했을 경우 그 자녀, 즉 손자(녀)의 성은 다음 중 어떤 것이 되어야 하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長李, 金李, 長朴, 金朴, 長李朴, 金李朴, 李長金, 朴長金, 長金李朴. 즉 순열(combination)의 문제가 발생됩니다. (당연히 앞에서 지적한 조합의 문제도 결부 됩니다.) 하지만 이 경우들 중 당연히 長金李朴 또는 李朴長金이 결정이 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다른 성이 결정이 될 경우 長金과 李朴의 성이 만들어진, 즉 부모양성 사용의 목적과 가치가 상실되기 때문입니다.

이 문제는 자식의 자식의 자식, 즉 증손의 경우가 되면 더욱 복잡해집니다. 예를 들면 長金李朴씨인 손자(녀)가 崔高陳趙씨와 결혼을 하면 증손의 성은 長金李朴崔高陳趙씨나 崔高陳趙長金李朴씨가 될 겁니다. 그리고 그 다음 세대의 성은 더욱 더 복잡해집니다. 즉 새로운 세대가 연속될 때 마다 姓의 복잡도는 2n 만큼 기하급수적으로 증폭합니다. 이런 문제를 회귀성(recursion)이라고 합니다. 동일한 문제가 세대마다 반복된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각각의 경우에도 앞에서 지적한 조합의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그러면 이런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요? 위에서 제안한 방법과 동일합니다: 1) 등치성과 동시성의 부여, 또는 2) 새로운 姓字의 창조. 간단하게 다시 말하면 새로운 가정이 만들어져서 자식들을 나으면 그 자식들을 위한 새로운 姓字를 만들면 됩니다.

姓의 일회적 가치

새로운 姓字를 만드는 것은 그리 큰 문제가 아닙니다. 하지만 새로운 姓字가 의미하는 가치는 매우 크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사회의 패러다임의 변화, 즉 구조적 변화를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부계이건 모계이건 성의 세속은 씨족사회를 의미합니다. 예를 들면 필자는 慶州李氏益齋公派35代孫입니다. 제가 속한 씨족의 분류와 체계 및 세대가 정확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역사와 전통이라는 집단적 가치가 남아 있습니다. 그렇다고 여기에 과거 씨족사회의 절대적 가치와 양식이 남아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 가치와 양식은 시대마다 변합니다. 조선시대와 지금을 비교해 보면 간단하게 알 수 있습니다.

부모양성의 사용과 이에 따른 새로운 姓의 의미는 씨족사회가 아닌 家族社會의 시작을 의미합니다. 양성을 사용할 경우 분가를 해서 새로운 가족 세대가 만들어질 때마다 새로운 성이 탄생합니다. 그리고 이 세대가 지나가면 그 성을 소멸됩니다. 이럴 경우 성은 한 가족의 세대만을 위한 성이 됩니다. 한번만 사용하고 버리는 일회용 성입니다. 그럼 과연 이러한 일회성인 성을 우리가 알고 있는 姓이라고 해야 하나요? 이러한 성은 姓이라기 보다는 ‘가족세대명(家族世代名)’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姓이 가지는 혈통성을 이런 ‘성’에는 적용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일회용이기 때문에. 이들만의 이런 가치를 표현할 수 있는 새로운 성의 보통명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姓이 계집女자에 날生자로 이루어진 것처럼 집家자에 날生자를 조합한 ‘家生’(훈은 ‘가족세대이름’, 음 ‘성’)이라는 글자를 만들어도 사용해도 무방할 것 입니다. 만약 ‘성’이라는 음이 맘에 들지 않으면 ‘가(家)’자의 ‘ㄱ’으로 ‘성’의 ‘ㅅ’을 대체해서 ‘겅’이라해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家生’ 족세대이름 겅. 그래서 ‘성명’ 이라는 보통명사도 ‘겅명’이라는 새로운 보통명사로 대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姓文化의 다양성

姓문화는 매우 다양합니다. 일반적인 姓문화는 父系중심입니다. 우리 사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과거에 母系, 즉 母姓을 따르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일본은 어떨까요? 일본의 성문화는 선택적이라고 합니다. 자식의 姓은 부모의 집안 중에 명망(권력, 자본, 명예 등)이 있는 집안의 성을 따를 수 있다고 합니다. 즉 母姓을 선택적으로 따를 수 있다는 말입니다. 매우 일본적이다 라는 생각이 들지만, 과거 가족의 생존을 위해 치열하고 열악했던 일본 역사와 문화를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예라는 생각이 듭니다.

(정확히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중앙아시아 일부 지역에서는 자식의 姓을 결정하는 매우 흥미로운 체계가 있다고 합니다. 남자 자식의 성은 아버지 형제(남자)의 성을 나이순으로 따르고, 여자 자식의 성은 어머니 자매(여자)의 성을 나이순으로 다르다고 합니다. 전제조건은 아버지 형제의 성과 어머니 자매들의 성이 모두 다르다고 합니다. 결과, 자식의 성이 모두 다르게 됩니다. 집안과 집안이 결혼을 거듭할수록, 한 부족, 나아가 여러 부족이 모두 같은 유형의 이름을 가지게 됩니다. 모두가 얽히고설키게 되어 자식을 나으면 한 가족의 자식이 아니라 부족 전체의 자식이 됩니다. 그 배경은 이 지역 유목민은 집안 또는 부족 간의 결혼을 통해 집안 또는 부족 간의 결속을 강화하고 나아가 외부 세력에 대한 단일한 응집력을 이끌어 낼 수 상황들이 많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면에서 중국정부의 서북공정은 절대 쉽지 않을 것입니다.)

서양(유럽 및 남북미 등)의 경우는 여자가 결혼을 하면 자신의 姓을 남자의 姓으로 바꿉니다. 최근까지도 여자가 이혼을 할 경우 여자의 성은 ‘새’ 남자의 성으로 바뀌는데 ‘헌’ 남자의 성은 없어지지 않고 새 남자의 성 뒤에 붙게 됩었습니다. 예를 들면 Lady 양이 처음 First에게 결혼/이혼하고 난 다음 Second에게 결혼/이혼하고 난 다음 Third에게 결혼을 하면 Lady의 이름은 Third-Second-First가 됩었습니다. 꼭 여자가 물건처럼 누구의 소유였는지를 보여주는 등기증명서 같았습니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최근에도 결혼을 해도 여자 성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여성의 권리를 보장하는 운동으로까지 이해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처럼 姓문화는 그 사회의 역사와 가치를 표현하는 대표적인 양식입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그 양식이 역사처럼 진화하고 발전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姓文化

필자는 부모양성사용을 반대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부모양성을 쓰면 가족의 민주화가 이루어진다는 논리, 또는 역으로 가족의 민주화가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부모양성을 사용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논리에는 반대합니다. 왜냐하면 부모양성을 사용하든 하지 않든 간에 현재 우리 사회에서는 가족의 민주화는 진행되고 있으며, 이 민주화는 부모양성을 사용한 결과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 사회의 가장 중요한 문제는 인권의 문제입니다. 즉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이 언제 어디서나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인간다운 대접을 받는 것입니다. 가정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부 간에, 부모와 자식 간에, 형제 간에 인간다운 대접을 받을 수 있는 가정을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여기에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의료 등의 다양한 외적, 내적 상황과 내용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문제들이 단지 형식적으로 부모양성을 사용하면 해결된다는 논리는 부모양성의 사용이 가져오는 가족체계 내의 다양한 내용과 문제들이 어떤 이유 때문에 어떻게 해결될 수 있는가에 대한 인과관계를 너무나 단편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기우일지 모르겠지만 필자는 부모양성사용에 대한 지나친 또는 절대적 가치는 우리 사회의 가족과 가족, 나아가 세대와 세대 간의 분열과 괴리를 가져올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 가족의 한 세대만을 위한 일회성 姓문화와 가치, 나아가 일가족-일세대 중심주의, 즉 극단적 가족중심주의가 형성되지 않을까 우려됩니다. 그럴 경우 과거 우리의 姓문화를 통해 형성된 우리 세대 또는 가족들 간의 역사와 전통이 무시되고 소멸되어 결국 내 가족만을 생각하는, 나 자신만을 생각하는 이기적인 사회가 형성되지 않을까 걱정이 됩니다. 이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인간평등을 추구하는 우리사회의 미래가치에 해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