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희망을 찾는 여행자

-이문근의 시세계

정공량(시인 ․ 시선 편집주간)

 

 

1. 오늘의 고난은 내일의 희망 메시지

우리 인간에게는 내일의 희망이 있고 그 희망을 찾아가는 본능은 삶의 원천이 되고 뿌리가 되고 있다. 그리하여 희망은 인간의 미래에 대한 담보이고 미래를 열어가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요소가 되는 것이다. 인간이 내일의 희망을 찾는 일은 미래를 열어가는 일이다. 인간 개개인의 미래는 개인의 노력 여하에 따라 이루진다. 인간의 원천은 아버지의 정자나 어머니의 태반으로 회귀된다. 인간이 살면서 자신을 이루어가는 과정에서 인간은 자신이 태어난 어머니의 태반으로 회귀하는 회귀본능의 의식이 무의식적으로 잠재해 있다. 인간은 살면서 자신의 미래를 가꾸어 가는데 이 과정에서 미래에 전력질주를 하면서 어머니의 태반으로의 회귀본능의식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어찌보면 내일의 희망을 찾아가는 길은 과거의 자신의 모태를 찾아가는 회귀본능의식과 맞물려 있어 이 양자의 의식이 우리의 잠재의식 속에 혼동되어 표출될 수 있다는 것이다. 다음 작품을 보면 알 수 있다.

 

 

기린봉 너머 먼 바다 있을 게다

 

은빛 파도 바다 두르고

산기슭 갈매기 하늘 훨훨 날 게다

 

바다 건너 멀고 먼 이국땅

어둠 뒤척이실 부모님

돌 키우는 끈기로 살아갈 형제들

바람 불면 올 게다

 

중바위 남고산성 구름 되어 날 사람들

완산칠봉 다가산 학 되어 날 인연들

그리운 그들 고향으로 꼭 올게다

 

달빛 파도 바다 두르고

하늘 끝 비행선 바람 따라 올게다

사람 찾아올 게다

 

-「기다림」전문

 

「기다림」이란 작품인데 ‘산’과 ‘바다’를 소재로 하고 있다. 이 시에서 ‘산’은 우리 사는 현실을 이야기 하고 있다면 ‘바다’는 우리의 이상향를 나타내고 있다. “기린봉 너머 먼 바다 있을 게다”에서 보면 ‘기린봉’은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 그 자체를 이야기 한 것이라고 볼 수 있고 ‘바다’는 우리가 바라는 이상향이 되는 것이다. 현실인 ‘기린봉’ 과 이상향인 ‘바다’는 이 시에서 함께 표출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기다림이라는 존재는 항시 미래지향적이다. 현실의 고난과 역경을 헤치고 내일을 열어나가고자 하는 시적화자의 의지의 표출이 강건하게 나타나고 있는 곳이다. 삶은 언제나 우리 주변에서 고난과 아픔으로 일관되지만 무언가 우리에게 희망이라는 존재는 항시 역설적으로 버티고 있어 우리는 내일이라는 존재를 찾아가는 방랑자가 되는 것이다. 이런 희망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는 시어는 ‘바다’나 ‘바람’ ‘하늘’ 등으로 나타나고 있다. 여기서 우리 현실을 ‘산’으로 본다는 그 대치적인 ‘바다’가 이상향을 지칭하는 것이다. 다음 시를 보기로 하자.

 

 

바위는 겹겹이 쌓인 제 고통을

그저 곱게만 풀어 헤치고 있다

한 마리 물새처럼

생의 끝자락에 닿기 위해 날개를 펴고

 

시간의 거친 손길은

아직도 내 마음에 머무르고 있는데

불멸의 하늘과 바다만 끝없이 쳐다보며

다시 내일의 꿈을 꾸지만

홀로 서 있는 나는 먼 바다의 작은 바람이나 되고 싶다

 

누군들 바다에 와서

바다와 같은 삶을 생각해 보지 않았겠는가

누군들 바다에 와서

세상 뒤로 하는 죽음을 생각해 보지 않았겠는가

 

절벽과 절벽 사이,

내 마음과 네 마음 사이

서툰 그림자 자꾸만 밀려간 사이

비운 가슴을 채우는 그 많은 침묵의 소용돌이

그 이후에 마침내 환한 바닷길을 열고 있다

-「채석강에서」전문

 

 

이 시에서는 바위를 통해서 인간의 고뇌를 우회적으로 얘기하고 있다. “바위는 겹겹이 쌓인 제 고통을/그저 곱게만 풀어 헤치고 있다/한 마리 물새처럼/생의 끝자락에 닿기 위해 날개를 펴고”에서 보면 “바위는 겹겹이 쌓인 제 고통을”에서 “바위”는 우회적으로 인간을 얘기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바위는 겹겹이 쌓인 제 고통을” 풀기 위해 “한 마리 물새처럼/생의 끝자락에 닿기 위해 날개를 펴고” 라고 시사하고 있다. 그렇다 우리 인간의 삶은 항시 고난으로 얼룩지지만 이를 슬기롭게 풀어가기 위한 희망적 메시지는 멈추지 않는 것이다. 이 시의 마지막 부분에서 “비운 가슴을 채우는 그 많은 침묵의 소용돌이/그 이후에 마침내 환한 바닷길을 열고 있다“ 라는 부분에서는 “비운 가슴을 채우는”은 결국 “그 많은 침묵의 소용돌이”로 희망의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고난한 삶의 종래에 가서는 결국 희망의 밝은 빛이 찾아온다는 얘기이다.

 

2. 질긴 외로움 뒤에 오는 희망 메시지

우리 인간에게는 숙명적으로 외로움이란 존재가 우리 삶의 한 삶의 일부로 존재하고 있다.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이다. 혼자서 완성할 수 없기 때문에 항시 또 다른 나를 찾고 있는 것이다. 또 다른 나를 만나고 또 만나도 외로움이란 존재는 그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이 외로움이란 존재는 항시 우리 곁에서 우리와 함께 존재한다. 문명이 발달하면 할수록 산업화되면 될수록 인간 존재는 나약해지고 외로움의 차원을 넘어서서 상실감과 빈곤감 우울증에 빠져갈 수 있는 섬약한 존재라는 것이다. 우리는 이런 문명된 세상에서 ‘군중 속의 고독’처럼 오히려 상대적 빈곤감에 빠져드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것은 상대적으로 인간과 인간 간의 정이 메말라 가는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이다. 기계와 컴퓨터가 사람이 할 일을 많이 해내기 때문에 사람이 필요 없어지고 오히려 사람이 기계처럼 전락하고만 시대가 되었다. 다음 시를 보면 알 수 있다.

 

나무는 외롭다

홀로 있기 때문이 아니다

나무는 슬프다

혼자 서있기 때문이 아니다

 

누가 마음이 아프다는 건

서로 같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누가 외롭고 슬프고 아프다는 건

내 안에 네가 없다는 것이고

네 안에 내가 없다는 것이다

우리 안에 우리가 서로 없다는 것이다

 

우리에겐 아직도 우리가 없다는 것이다

-「무애無愛」전문

 

이 시는 오늘의 우리 인간들의 삶을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여기서 “나무”는 “사람”이라고 대치시켜도 관계없다. “누가 마음이 아프다는 건/서로 같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라고 얘기하고 있다. 그렇다. 인간은 제 각각이고 서로 같이 있을 수 없는 시대에 살고 있다. 즉 마음과 마음을 주고받을 시간조차 없이 서로가 바쁜 기계처럼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사람과 사람간의 대화가 단절되고 아주 가까워야 할 가족 간에도 회사일에 입시 때문에 시간을 맞출 수 없어 대화하지 못하고 살고 있는 시대이다. 대화가 없으니 너와 내가 소통할 수 없고 소통할 수 없으니 마음이 통할 수 없는 영원한 남남처럼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답으로 아래의 시를 보기로 하자.

 

 

그것도 한 걸음씩 제 마음을 내어 놓으시니

바람은 꿈결처럼 찾아와

내 마음에 그냥 꽃이 됩니다

 

마지막 손길이라도 웃음을 드리려고

마지막 숨결처럼 다가온 봄날

없는 달빛이라도 한 사발씩 꺼내어

자꾸만 한 걸음씩 앞으로 내어 놓으시니

 

풀이며 꽃이며 그 향기며

내 마음 구석구석 부풀어 오르는 환한 소식

지금 어디서 다시 꽃피는 마을,

소곤소곤 얘기 하며 피어 올리는지

-「희망」전문

이 시는 앞에서 단절된 우리 인간 간의 대화의 단절을 무너뜨리는 희망을 노래하고 있는 작품이다. 희망은 어디에 있는가? 희망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우리 주변에 항시 실바람처럼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알면서도 실행하지 못하고 우리가 알면서도 방관하는 사이 우리 곁에서 점차 멀어진 것이다. 우리가 쓸데없는 데에 욕심을 부리다 보니 이런 소박함 참다운 행복은 머리 도망쳤는지도 모를 일이다. “없는 달빛이라도 한 사발씩 꺼내어/자꾸만 한 걸음씩 앞으로 내어 놓으시니”에서 보면 “없는 달빛이라도 한 사발씩 꺼내어” 놓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그러다 보면 희망은 우리 주변에 활짝 꽃이 필 것이 분명하다. 이런 희망과 상승적 메시지를 이문근은 시의 근간으로 다루고 있다. 그가 표출하고자 하는 세계는 소박한 우리 삶의 도처에서 이런 희망 메시지를 연출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희망 메시지는 특별한 데에 있지 않다. 이문근이 찾아낸 희망 메시지는 어둡고 칙칙한 일상의 변두리에서부터 우리 삶의 도처에 웅숭거리고 숨어 있는 모든 것들에서 그 씨앗들을 찾고 있다. 어둠도 이런 희망 메시지에 연접시키면 희망의 꽃이 되고 빛이 되는 것이다. 우리가 눈길 주지 못한 사소한 곳에서 이문근은 주도면밀하게 희망 메시지를 찾아내고 있는 것이다.

 

 

대지는 나무에게서 자라나 가지까지 뿌리를 내리고

이제 쉬고 싶어 거름진 흙이나 되고 싶다

 

태양의 울림으로 잎과 줄기를 올리는

따뜻한 빛이나 되고 싶다

 

나무에게 이제 바람이나 되고 싶다

하늘처럼 시원한 정원과 드넓은 가지 펼치는

 

물이나 되고 싶다

구름처럼 촉촉한 결실의 열매를 맺는

 

나무에게 다가가서

이제는 그들의 숨결 되고 싶다

끝없이 드넓은 영혼이 되고 싶다

 

-「사랑」전문

 

사랑이라는 존재는 우리 주변에 필요로 하는 곳이 무한히도 많다. 삶을 같이 하는 소외된 우리 인간은 물론이고 동물이나 식물 그리고 사소한 광물에게 까지도 사랑은 필요로 한다. 우리들의 사랑의 손길과 숨결이 갈 때 희망의 메시지는 전달되어 그들은 온전한 사랑의 수혜자가 될 것이며 수혜자가 된 그들은 다시 사랑을 전해주는 시혜자가 될 것이다.

 

3. 사랑은 희망이 던지는 마지막 단계의 메시지

사랑은 어디 있는 존재인가. 그것은 우리 삶의 주변에 보이지는 않지만 우리가 마시는 공기와 같은 존재로 살고 있다. 이 사랑이라는 존재는 항시 누군가에 의해서 누군가에게 커다란 희망메시지가 되는 것이다. 희망이라는 존재는 어둠 속에 불을 밝히는 그런 존재이다. 이 사랑이란 존재는 희망메시지의 최선의 단계이다. 그러나 이 사랑의 실천의지 없이 우리에게 행복은 가깝지 않을 것이다. 우리 스스로가 실천하고 우리 스스로가 이루어갈 때라야 빛을 발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사랑의 실천을 향한 메시지를 다음의 시는 담고 있다.

 

 

난 당신에게 느낌이고 싶다

눈에 보이지 않는 느낌이고 싶다

세월이 흘러 기억마저 사라진 노년이 되어도

난 당신에게 웃음이고 싶다

 

난 당신에게 사연事緣이 되고 싶다

뇌리에 떠오르는 알뜰한사연이고 싶다

세월이 흘러 추억마저 사라진 노년이 되어도

난 당신에게 아름다운 미소이고 싶다

 

돌아오지 않는 시간의 뒤안길에서

나는 당신을 보내지 아니 하였으니

돌아설 수 없는 인연의 뒤안길에서

나는 당신을 떠나지 아니 하였으니

 

난 당신에게 울림이고 싶다

마음 깊이 스며드는 울림이고 싶다

세월이 흘러 촛점마저 흐려진 노년이 되어도

난 당신에게 숨결이고 싶다

-「당신에게」전문

 

 

여기서 “당신”이라는 존재는 내가 아닌 세상의 모든 존재를 일컬음에 다름 아닌 것이다. 이 시에서처럼 “당신”에게 “나”의 온전한 존재가 된다면 우리 사회는 희망이 넘칠 것이다. “난 당신에게 느낌이고 싶다/눈에 보이지 않는 느낌이고 싶다/세월이 흘러 기억마저 사라진 노년이 되어도/난 당신에게 웃음이고 싶다“에서 보면 여기서 타인을 향한 나 자신의 사랑 메시지는 은근하고 표식없는 아름다운 존재여야 한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 사랑은 나타내거나 우쭐대지 않는 그지없이 소박하고 받는 자에게 편안한 것이 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에게 희망은 단순한 논리로 설명되어질 것이 아니다. 그러나 각박해져만 가는 오늘날과 같은 시대에 이 사랑 메시지는 참으로 소중한 희망메시지가 아닐 수 없다. 다음의 시를 보자.

 

 

퇴색한 아지랑이의 모습들만 남은

사월 초순 오후의 나른함은

연두색 햇살과 물결의 파편을 꿈꾸고 있다

아이들의 웃음소리에 밀려 골목은 살아나는데

수줍은 새싹의 그늘 아래

그리운 이의 이름을 불러본다

해를 거듭할수록 깊어지는

되새김을 반복하는 아픔은

결코 여기까지 데리고 올 게 아니었다

증오의 칼날이 가슴을 도려내던 시간들

울분의 질타가 뇌리를 분쇄하던 시절들

웃자란 생각 버리듯

가진 것을 다 버리는 저 하늘 닮았어야 하는데

살아있는 한 순간의 공백을 채우기 위해

바람은 내 숨결을 여는 녹색 신호등

봄은 눈물 없는 자의 영혼을 위해서

눈을 뜨고 채색을 하며 이 세상으로 밀려온다

-「봄이 오는 까닭」전문

 

이 시는 희망 메시지를 즐겁게 유포하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 우리 인간의 마음에 자리하고 있는 쓸모없는 그 무엇을 버리고 순수한 마음으로 돌아가서 사랑의 실천의지를 행동으로 보여주자는 내용이다. “되새김을 반복하는 아픔은/결코 여기까지 데리고 올 게 아니었다/증오의 칼날이 가슴을 도려내던 시간들/울분의 질타가 뇌리를 분쇄하던 시절들/웃자란 생각 버리듯/가진 것을 다 버리는 저 하늘 닮았어야 하는데”에서 보면 “되새김을 반복하는 아픔은/결코 여기까지 데리고 올 게 아니었다” 라고 부정적인 것에 대한 탄식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가진 것을 다 버리는 저 하늘 닮았어야 하는데” 로 종결되는 의지의 분투를 볼 수 있다. “저 하늘 닮았어야 하는데”에서 보면 우리 마음을 좀더 넓고 아름답게 가져야 한다는 강렬한 메시지에 다름 아니다.

이문근은 자연과 인간을 소재로 작품을 쓰고 있다. 그의 작품의 주된 내용은 오늘의 우리 인간 군상들의 모습을 통해서 우리의 삶이 어떻게 진행되어야 할지에 대하여 근본적인 탐색의 자장을 늦추지 않고 있다. 그가 그려내고 있는 희망에 대한 절절한 메시지는 우리 인간들이 무심히 떨쳐버린 오늘의 소외된 인간관계의 문제점을 신랄하게 반추하여 꼬집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면서 그 궁극적인 모색은 희망의 메시지를 널리 사랑으로 펼쳐 나가자는 데에 있다. 이런 실천의지를 작품 속에 투영하여 보여 주고 있어 그의 시는 긍정적 메시지로 희망을 가득 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