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근 시집 3집: 봄이 오는 까닭
글 수 64
2013.02.09 09:18:09 (*.120.9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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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만小滿
- 무명초無名草
창가엔
누구의 것도 아닌 풀이 있다
이름도 꽃도 없는 풀
풀은 화분 속에서 주는 대로 자란다
물을 주면 곧아지고 마르면 굽는다
며칠 사무실을 비우면 풀은 굽고
며칠 가까이 있으면 풀은 산다
풀은 스스로 살 수 없는 화분과 사무실에 있다
내 생활에 있다
여러 날
세월과 사람에 지쳐 겨우 돌아 온 어느 날
풀은 마른 잎으로 앙상하게 남았다
내 안에서 생사를 반복하던 풀은 결국 죽었다
이제 누구의 풀인가
창에 비친 내 모습은 어느 듯 앙상한 뼈만 남았다
이제 누구의 나인가
창가엔 누구의 풀도 누구의 나도 누구의 세상도 없다
먼 곳에선 뻐꾸기만 공허하게 사람과 세월에 운다
물을 준다
말라 죽은 풀에 물을 준다
물을 주는 이유는 없다
살기를 곧아지기를 바라는 마음도 없다
단지 마음에 내리는 슬픔의 눈물 아픔의 눈물 소외의 눈물
난 풀로 울고 풀은 나로 죽은 인연
인연에 겨운 세월을 영혼으로 울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