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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비빔밥은 ‘공동체’다

등록 :2016-03-02 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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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섞음’이 개인주의, ‘이김’이 집단주의라면 ‘비빔’은 개체와 전체가 조화를 이룬 상태로 ‘우리’라고 표현할 수 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우리’의 비빔밥을 서로 찰지게 비벼 나눠먹는 ‘우리’가 함께 하는 시대를 만드는 것이다.
민족문화가 중요한 이유는 문화 속에 민족의 소중한 삶과 정신이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우리가 전통 음식을 잊지 않고 지금도 찾는 이유 중 하나도 현재 우리가 필요한 민족의 삶과 정신이 전통 음식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

전주비빔밥은 한국의 대표적인 서민 음식 중 하나이다. 입맛이 없거나, 반찬이 마땅하지 않을 때, 밥과 남은 반찬들을 골고루 섞어 고추장으로 척척 비벼 먹는 대표적인 대중 음식이다. 특히 전주비빔밥에 꼭 들어가는 전주 콩나물은 산성수의 영향으로 빳빳하지만 삶으면 사각거리는 식감이 살아 있을 뿐만 아니라, 참기름을 더하면 비빔밥이 더 찰지고 고소해진다.

이런 전주비빔밥에는 우리 민족의 어떤 삶과 정신이 들어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것은 이름 자체에 있다고 본다. 즉 비빔밥에는 ‘비빔’의 삶과 정신이 있다는 말이다.

‘비빔’의 삶과 정신이란 무엇일까? 비빔이란 섞음과 버무림과 이겨짐의 단계를 거쳐 찰짐이 ‘적당히’ 균형있게 어우러진 상태를 의미한다. 비빔밥은 기름진 밥에 재료들을 섞어서, 고추장을 발라 버무리고, 밥이 재료에 묻은 듯, 아니면 재료가 밥에 묻은 듯 적당히 이겨져, 적당한 끈끈함으로 서로 하나가 된 듯, 하지만 결코 하나라고 말할 수 없는 상태라 할 수 있다.

만약 이 과정이 섞음과 버무림의 단계에만 머무른다면, 이런 밥은 비빔밥이 아니라 ‘섞음밥’이라고 불려야 마땅하다. 역으로 적당한 찰짐의 단계를 지나쳐 짓이겨지면, 이런 밥은 ‘짓이김밥’이라고 불려야 마땅하다. 비록 경계는 모호할지라도, 비빔밥의 정수는 이처럼 ‘섞음’과 ‘이김’ 사이의 균형, 즉 중용에 있다.

이런 ‘비빔’을 ‘섞음’과 ‘이김’ 사이의 중용으로 해석할 수 있는 언어적 수사는 없을까? 필자는 비빔밥에 담긴 삶과 정신, 즉 ‘비빔’을 해석할 수 있는 언어의 원형으로 ‘우리’라는 단어를 꼽고 싶다. ‘섞음’을 단순한 개인주의 상태로, ‘이김’을 개인이 유리된 집단주의 상태로 본다면, ‘비빔’을 개체와 전체가 유기적으로 조화를 이룬 상태로 볼 수 있고, 이를 ‘우리’라는 상태로 표현할 수 있다. 또 다른 원형으로 ‘공동체’라는 단어도 꼽을 수 있다. 개인이 전체와 함께하고, 전체가 개인과 함께하는, 하나 된 ‘공동체’. 나아가, 내가 모두를 위하고, 모두가 나를 위하는, ‘우리’의 ‘공동체’.

요즘처럼 혼탁한 세상에 ‘우리’라는 ‘공동체’는 파괴되고 있다. ‘섞음’에만 머무는 개인주의와 ‘이김’만을 요구하는 집단주의에 빠져 모두가 개인 혹은 집단만의 이익을 추구하고 있다. 우리의 자식은 없어지고, 나의 자식만 있는; 우리의 가족은 없어지고, 나의 가족만 있는; 우리의 중앙과 지역은 없어지고, 나의 중앙과 지역만 있는; 우리의 민족과 나라는 없어지고, 나의 민족과 나라만 있는; 우리의 미래는 없어지고, 나의 미래만 있는, 이런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다. 그래서 결국 ‘우리’는 없고, ‘나’만이 존재하는 대한민국이 되었다.

요즘은 사람의 신분을 각자의 수저로 표현하는 참담한 시대가 되었다. 태생부터 결정된 수저로 각자 자신만의 세계에서 자신의 밥과 반찬만을 가려 먹고 있다. 골고루 먹지 않고 이렇게 편식을 하다 보면 결국 병에 걸리고 죽음에 이르게 된다.

이문근 전북대 컴퓨터공학과 교수·시인
이문근 전북대 컴퓨터공학과 교수·시인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수저를 가릴 것 없이, 모두, ‘우리’라는 큰 그릇에, 밥과 재료를 골고루 섞어 넣고, 고추장을 척척 발라 버무린 다음, 찰지게 비벼서, ‘우리’의 비빔밥을 ‘우리’가 서로 나누어 먹는, 그런 ‘우리’가 함께하는 시대를 만드는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을 경우, 우리 사회는 개인주의로 파편화되어 결국 조각조각 붕괴될 수도 있다, 이것이 바로 전주비빔밥에 깃든 우리 민족의 소중한 삶과 정신이다.

이문근 전북대 컴퓨터공학과 교수·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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