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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수소탄 ‘실험’과 ‘시험’의 차이


실험과 시험의 차이는 과학과 공학의 차이와 같은 면이 있다. 과학은 어떤 현상을 관찰·조사·분석해 그 원리를 밝혀내는 학문이며, 공학은 이렇게 밝혀진 원리를 실생활에 적용하는 학문이라는 관점에서, ‘실험’(experiment)은 관찰된 현상의 원리를 귀납적으로 입증하는 과정이며, ‘시험’(test)은 이러한 원리를 적용한 제품의 성능과 품질을 연역적으로 측정하기 위한 과정이라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 이런 관점에서 지난 6일에 관측되고 보도된 북한의 수소탄 ‘실험’을 어떻게 판단할 수 있을까? ‘실험’일까 ‘시험’일까? 이를 판단하는 것은 전문가가 아니고서는 매우 어려운 일임이 분명하다. 설령 전문가라 하더라도 남북 그리고 북-미 간의 교류가 부재한 상황에서 이를 판단하는 것 또한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지난 1월6일 오전 10시30분 북한 풍계리 핵시설 인근에서 4.8~5.2 규모의 지진파가 관측됐고, 두 시간 뒤 북한은 “첫 수소탄 시험이 성공적으로 진행되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남한의 대부분 언론들은 북의 “수소탄 시험”을 ‘실험’으로 보도했을 뿐만 아니라, <경향신문>(1월10일 인터넷판)은 인용한 북한 보도문의 원문을 “수소탄 시험”에서 “수소탄 실험”이라고 변경해 보도했다. 이러한 언론의 보도를 보면서, 진위를 따지기 전에 미리 실험이라고 단정을 지었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그래서인지, 이후에 나오는 관련된 기사들은 수소탄 ‘실험’이 시험이 아니라 실험일 수밖에 없다는 내용을 연역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다.

이미 북한은 1989년 5월에 (상온) 핵융합 반응에 성공했고, 2010년 5월에 (상온) 핵융합 반응장치를 제작했다고 보도했을 뿐만 아니라, 2013년 1월20일에 이 핵융합 기술이 수소·붕소 핵융합에 기반한 ‘플라스마집초 방식’ 기술임을 밝혔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물리적·가상적인 실험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번에 성능과 품질을 측정한 수소탄이 이런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수소탄에 대한 검사였다면, 이는 ‘시험’에 해당될 것이다. 북의 보도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도 문제이지만, 역으로 이를 확실한 과학적 근거 없이 단순히 실험이라고 단정해 버리는 것도 문제가 될 수 있다.

손자병법에 “지피지기면 백전불패”라 했다. 혹 수소탄에 대한 공학적 ‘시험’을 단순히 과학적 ‘실험’으로 잘못 판단해 북한의 군사력을 잘못 판단한다면 백전불패의 전제조건이 성립되지 않을 수 있다. 그렇다고 남한이 북한처럼 핵무기를 개발하게 된다면, 이는 북한이 미국을 상대로 핵을 개발하는 명분과 전혀 다를 바가 없다. 그리고 만약 남북 또는 북-미 간에 핵전쟁이라도 난다면, 한반도와 동아시아는 돌이킬 수 없는 재앙에 빠질 것이다. 그렇게 되면, 남과 북도 없고, 진보와 보수도 없고, 호남과 영남도 없고, 수도권과 지역권도 없고, 한·중·일도 없게 된다.


지금 필요한 것은 한반도의 비핵화와 평화를 위한, 6자회담과 남북 정상회담의 재개이다. 미국 부시 정부의 6자회담 관리들이 회담의 결렬 이유가 행동 대 행동이라는 단계별 이행절차를 미국이 이행하지 않은 데 있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리고 회담이 결렬된 이후 진행된, 북한의 2009년과 2013년의 제2차, 3차 핵 ‘실험’에 이어진 2016년의 제4차 수소탄 ‘실험’, 2009년과 2012년의 은하 발사체에 의한 광명성 2호, 3호 인공위성 발사, 2015년 5월과 12월 진행된 에스엘비엠(SLBM·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 잠대지 미사일 ‘실험’들은 결코 우연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이 시점에서 6자회담과 남북 정상회담이 중요한 것은 결코 다른 이유가 아니다. 한반도의 평화와 민족의 안녕을 위한 마지막 선택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문근 전북대 컴퓨터공학부 교수


이문근 전북대 컴퓨터공학부 교수
이문근 전북대 컴퓨터공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