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벌과 재벌의 존속기간에 관한 공식
글쓴이 이문근 (전북대 컴퓨터공학 교수)

스스로 운동한다는 권력과 자본. 그 힘은 죽은 귀신도 움직일 수 있을 정도로 거의 절대적입니다. 과거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전쟁과 살상이 이 절대성에 의해 정당화 되었고, 지금도 지구를 수백, 수천 번 파괴시킬 수 있는 핵무기마저 이 절대성에 의해 정당화되고 있습니다.

그런 이유 때문일까요? 권력과 자본을 가진 개인과 집단은 그 권력과 자본을 절대 포기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오히려 권력과 자본을 더 강화시키고 나아가 그것을 다음 세대에 상속시켜 그들의 권력과 자본을 계승하고 재생산하게 합니다. 그렇지 않을 경우 현재의 권력과 자본마저 위협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

요즘 삼성이 우리 경제와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절대적입니다. 삼성전자가 무너지면 우리 경제가 무너진다는 진단은 그 절대성을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입니다. 삼성물산, 삼성전자, 삼성전기, 삼성건설, 삼성중공업, 삼성카드, 삼성생명, 삼성화재, 에버랜드, 삼성자동차(르노에 넘어갔지만), 삼성SDS, 신세계백화점, 제일제당, 제일모직, E-마트, 홈플러스, 중앙일보, 중앙방송 등에서부터 과자와 껌 등을 만드는 중소기업 분야까지 자본력을 확대하는 것을 보면 그 정도가 현재의 정권보다 막강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 ‘X 파일’과 같은 사건을 보면 더 막강한 것도 같습니다.

하지만 그 절대성만큼이나 그 절대성을 위협하고 있는 위험성 역시 절대적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권력과 자본은 무한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삼성전자의 경쟁 영역이 무한하다면 삼성전자는 무한한 경쟁을 통해서 무한한 자본을 추구할 수 있기 때문에 다른 영역에 대한 관심이나 개척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삼성은 문어발 경영을 계속 확대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제 개인적으로는 분배 법칙의 한계라고 생각합니다. 즉 삼성재벌이 가지고 있는 자본의 분배가 무한한 영역 하에서 무한한 규모의 분배가 보장되지 못하기 때문에 다른 영역에서의 분배가 요구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배후에는 소유권자의 증식의 문제가 있습니다. 삼성의 창업자인 이병철은 이건희 등을 비롯한 몇 명의 자식을 낳았습니다. 이건희 등을 비롯한 삼성가의 자식들은 결혼을 하고 또 이재용 등을 비롯한 다음 세대의 삼성가의 자식을 낳았습니다. 이재용 등은 다시 결혼을 해 그 다음 세대의 삼성가의 자식을 낳았습니다. 자식을 낳고 자식이 결혼을 하는 동안 한정된 부를 공유해야 할 사람과 집안의 수는 세대를 거치면서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게 됩니다. 자식이 결혼을 해서 가정을 만들면 그 자식의 가정을 위해서 유목민처럼 독립적이든, 종속적이든 새로운 기업이 만들어져야 합니다. 그리고 그 기업은 그 집안을 정치․경제적으로 책임져야 합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리 간단하지 않습니다. 문제는 재벌가의 세대들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정도를, 재벌 집단이 새로운 기업을 각 분야에서 수용할 수 있을 정도로 경쟁 영역이 무한하지는 않다는 점입니다. 분야는 제한되어 있고, 각 분야마다 나름대로 수십년간 치열한 경쟁체제 속에서 생존해온 전문가와 집단, 즉 삼성이 삼성의 새로운 계열 기업이 경쟁해야 할 다른 대/중소기업이 있다는 것입니다. 삼성이 최근 몇 년 동안 삼성전자와 몇 개의 기업만을 제외하고 나머지 기업들은 경영상태가 건전하지 못하다는 보도는 시사하는 바가 많습니다.

나아가 최악의 경우에는 같은 삼성계열사끼리 같은 분야에서 경쟁을 해야 하는 경우가 발생될 수 있습니다. 삼성생명과 삼성화재, E-마트와 홈플러스 등과 같은 경우입니다.

하지만 경쟁이 가능한 경우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경쟁이 가능하다는 것은 그 분야에서 아직도 이윤이 발생하고 있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기업이 예상했던 것처럼 순이익을 발생시키지 못하고 장기 누적 적자가 발생해 부실해져서 결국 망하는 경우입니다. 부실기업은 망하면 그만이지만 그 기업의 부실을 만회하기 위해 같은 계열사가 법적으로 또는 비합법적으로 부담을 지는 경우는 문제가 심각해집니다. 이런 부실기업이 세대마다 하나둘 발생되는 구조라면 문제는 더욱더 심각합니다. 대표적인 예가 이건희의 삼성자동차와 이재용의 에버랜드 전환사채 및 인터넷 분야 사업을 들 수 있습니다. (재벌들이 또 다른 재벌 또는 권력과 정력결혼을 주로 하는 이유가 성장의 기회를 극대화하고 분배의 기회를 최소화하여 바로 이러한 문제 발생의 가능성을 최소화하기 위한 것은 아닐까요?)

삼성이 자본과 권력의 자기증식과, 분배와 경쟁이라는 본질적 모순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는 삼성뿐 아니라 우리 사회의 미래를 결정하는 중요한 지표가 됩니다. 지금은 삼성이 이 결정을 해야만 하는 중대한 시점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왜 그럴까요?


■ 국가 권력의 존속 기간

과거 한 국가나 왕국이 존속하는 기간을 어느 정도로 예상할 수 있을까요? 아니 역으로 한 국가나 왕국이 특정 기간 동안 존속되어진 이유와 근거는 무엇이었을까요?

과거 한 왕국이 존속하는 시간은 대체적으로 300년 정도라도 합니다. 한 세대를 30년이라고 보았을 경우 약 10명의 왕이 지배하는 기간이 됩니다. 이 기간 중에 처음 3세대가 가장 중요하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3번째 왕까지 한 나라의 기틀이 될 수 있는 철학과 기반을 조성해야만 그 이후 100년 이상 정치, 경제, 문화가 왕성해진다고 합니다. 그 이후는 자체적인 모순과 부패에 의해 국력이 약해지고 결국 2~3세대 정도 갈등을 겪다가 망한다는 겁니다. 정립기 3세대, 융성기 4~5세대, 쇠퇴기 2~3세대. 이씨조선의 경우, 태조, 태종, 세종에 의해 왕권이 체계적으로 수립되는 과정을 보면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동양 역사에서만 보더라도 이 기간을 잘 유지 못한 나라들은 채 100년을 넘기지 못하고 망한 경우가 많습니다. 춘추전국 시대의 제후국과 진시황의 진나라, 수나라 등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그럼 3세대 동안 한 국가의 존속을 결정하는 것 중에 중요한 일은 무엇이었을까요? 저는 개인적으로 이 분야의 전문가는 아니지만, 권력의 유지․강화․통제 시스템을 어떻게 합리적으로 수립했는가라고 생각합니다.

제1세대에는 한 국가나 왕국을 세우기 위한 많은 개국공신들이 있습니다. 문인도 있지만 무인들이 많습니다. 왕(또는 황제)을 중심으로 많은 신하들이 공헌을 했습니다. 왕은 자신의 절대적인 권력을 확립하기 위해서 자신의 권력을 이들에게 나누어줘야 합니다. 왜냐하면 새로운 왕이 권력을 원하는 만큼 새로운 개국공신들도 권력을 원하기 때문입니다. 공신들도 노력과 희생한 만큼의 떡고물을 원합니다. 나아가 기존의 적대적인 세력을 제거하고, 우호적인 세력을 권력으로 흡수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 시기에 군주는 왕권이 아직 체계적이거나 확고하지 않기 때문에 공신과 우호적인 기존 세력에게 권력을 스스로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는 주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이 제1세대의 딜레마입니다.

제2세대는 제1세대 군주권을 기반으로 장기적으로 권력 유지 및 강화, 그리고 국가와 관료집단을 통제할 수 있는 군주 통치 체계가 확립되어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 2세대 통치 집단은 1세대 신하 중 2세대에 비협력적인 세력을 대부분 권력으로부터 제거시키고, 그들을 지지하는 세력을 육성하기 위한 혁신적인 관료체계를 정비합니다. 특히 초기 개국 공신들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무인정치에서 국가 통치 시스템을 구성하는 새로운 관료들은 대부분 문인들로 구성되어 이들로 관료들이 주로 구성됩니다.

즉, 1,2세대 기간 안에 군주들은 백성과 국가를 지속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군주와의 개인적 유대를 매개로 권력을 유지하거나 도모하는 측근 세력과 혈연집단(가족)을 정리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새로운 왕국의 체계를 위한 통치 이념과 통치 시스템을 만들어야 합니다. 전국시대의 혼란기를 통일한 진나라는 16년이란 단명왕조로 끝납니다. 이는 바로 이러한 과정이 실현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즉 2세 황제가 스스로 통치 시스템을 만들지도 못하였을 뿐 아니라 1세대인 진시황이 구축한 엄격한 통치시스템을 유지하지도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결국 진나라의 법도, 통치시스템도 권력을 존속시킬 만한 시스템으로 작용할 틈도 없이 단지 통일작업에만 작동된 한정된 법체계이자 통치체계에 불과하게 되었던 셈입니다.

한편 1, 2 세대의 이러한 작업 이후에 제3세대는 1, 2세대에서 구축된 새로운 권력체계 하에서 1, 2세대의 구속으로부터 벗어나 비로소 독립적으로 한 국가나 왕국을 운영하는 첫 세대가 될 수 있습니다. 이 시기에 국가나 왕국이 안정이 되면 그 다음 세대에서는 문화의 꽃을 피우게 되고, 이후 100년은 그 국가와 왕국의 전성기를 맞이한다고 합니다. 조선왕조의 전성기였던 세종대왕 시기는 1, 2세대를 이루었던 태조와 태종대에 닦아놓았던 통치시스템의 완성 이후의 결실이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런 면에서 조선왕조는 임진왜란 이후 자멸이 필연적이었으나 성리학의 부흥으로 새로운 통치 철학을 수립하여 200년 더 연장이 되었다고도 합니다. 만약 조선이 망하고 시대에 부응하는 국가나 왕국이 세워졌다면 우리 민족의 운명은 이후 동북아시아와 세계사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이런 면에서 천년왕국을 세웠던 고조선, 고구려, 백제, 신라 등은 세계사에 길이 남을 나라들입니다.


■ 재벌 자본의 존속 기간

“부자가 3대를 가지 못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몇 가지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1) 부(富)는 외부로부터 한정되어 있다, 2) 부의 상속자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3) 부를 내부적으로 다툰다.

삼성은 최근까지 정부의 비호 아래 급성장 했습니다. 그 결과 삼성은 용가리처럼 비대해졌습니다. 또한 상당 부분을 외국자본에 잠식당하게 되었고 경영권마저도 위협받고 있습니다. 한편 삼성은 자신의 권력을 2세에서 3세로 넘기고 있습니다. 다른 재벌도 마찬가지입니다

현재 이러한 상황은 매우 중요한 시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앞에서 보았듯이 한 국가와 왕국을 장기적으로 유지하기 위한 군주들이 구축한 권력 체계처럼, 삼성과 같은 재벌들이 자신들의 정체성과 존속에 관해 진정으로 고민해야 할 시점에 와 있기 때문입니다. 삼성은 과연 삼성에게 필요한 철학과 가치, 법과 질서는 무엇인가 스스로 냉철하게 비판해야 합니다.

삼성은 말 합니다: “삼성이 만들면 다릅니다.”

하지만 우리는 삼성이 만든 것들이 다른 것들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나아가 삼성 자체가 다른 기업들과 전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삼성은 변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3대를 넘지 못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변해야 할까요?

재벌과 기업은 과거 군주권처럼 10대 이상을 존속하기 위해 혁신적인 체계를 수립해야 합니다. 그 혁신적 체계의 바탕에는 “우리(국민과 기업)”라는 철학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없는 재벌과 기업은 “우리”가 없었던 군주권처럼 3대를 넘지 못합니다. 즉 “우리”의 철학을 바탕으로 한 혁신적 체계 위에 우뚝 선 기업은 “국민기업”이 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을 경우 삼성은 소수에 의한, 소수를 위한, 소수의 기업이 되고 말 것입니다.

자~ 이제는 삼성이 미래를 지향하는 “500년 경주 최부자”의 철학을 고민해야하는 시점이 되지 않을까요?
 
(2006/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