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이노니아가 되어버린 코이노니아

글쓴이 이문근(전북대 교수 전자정보학)

- 누가 정보 기술 분야에서 '코이노니아'란 용어를 맨 처음 사용했을까?


2005년 8월22일자 전자신문에서 " '코이노니아' 무선통신기술 개발"이란 기사를 보고 심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이유는 '코이노니아' 용어를 정보 기술 분야에서 전북대학교 영상정보신기술연구소에서 맨 처음으로 사용했다고 자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우선 위 기사에서 보도된 '코이노니아'에 대한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전자부품연구원(KETI, 원장 김춘호)은 산업자원부․정부통신부와 공동으로 최대 250개 디지털 기기가 자유롭게 멀티미디어 데이터를 교환할 수 있는 '코이노니아(Koinonia)' 무선통신 기술을 개발, 국내 통신시스템 전문업체를 통해 상용화를 추진중이라고 21일 밝혔다.'
'조진웅 KETI 통신네트워크연구센터장은 코이노니아는 친교․참여․화합을 뜻하는 고대 그리스어로 유비퀴토스 시대 모든 디지털 기기를 연결한다는 의미'라며 '특히 그동안 적절한 산업용 무선 통신 방식이 없어 고민하던 업체들의 좋은 해결책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 내용은 전북대학교 영상정보신기술연구소가 학술진흥재단의 2004년 중점연구소 사업에 제안했던 연구 내용과 문구까지 유사하다.

 
본 연구소에서는 2004년 4월부터 7월까지 약 10여명의 교수님들이 모여 '유비퀴토스 환경에서의 지능형 컨텐츠 리퍼포징에 대한 연구'라는 제목의 연구 제안서를 준비하여 학술진흥재단의 심사를 받았다. 그 내용은 정보 통신 환경에서 서로 다른 기기들이 서로 다른 정보를 자유롭게 교환할 수 있는 자동화된 환경을 구축하는 것이었다. 즉 위 기사에서 보도된 내용과 유사하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최종발표에서 우리의 개념을 상징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선전문구, 즉 캐치프레이즈가 필요했다. 며칠을 고민하던 중 이준환 교수님께서 '코이노니아'란 용어를 추천했다. 이준환 교수님께서는 '코이노니아는 안티오키아 교회에서 있었던 원시 기독교 공동체사회의 모습을 일컫는 말입니다. 모든 사람이 자신의 것을 내어 놓고, 필요한 만큼 가져가는, 우리 식으로 보면 대동의 공동체 같은 모습을 의미하는 이상사회입니다'라고 설명했다.
 

 
이 교수님은 나아가 정보 기술 분야에서의 코이노니아를 '어떤 장애 및 조건 없이 자유롭게 그리고 필요한 만큼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환경'으로 재정의하여 다음과 같은 문구를 정했다.
 
 
 
 
'Any Contents, 유비퀴토스 코이노니아.'
 

이 한 문구는 우리가 추구하는 목표를 그대로 드러낸 것이었다. 그 때 발표한 자료의 첫 쪽을 보면 다음과 같이 그 내용이 정확히 정리되어 있다.
 

우리가 여기에서 문제제기를 하는 것은 연구 내용이 아니다. 동일한 환경에서 동일한 유형의 문제에 봉착했을 때는 동일한 유형의 해결방법이 적용되는 것은 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우리가 제기하는 문제는 '코이노니아'란 용어다. 당시 우리는 그 의미를 정확히 파악하기 위하여 관련 전문 학술 영역에서 이 용어를 검색했고, 정보 기술 분야에서는 누구도 이 용어를 사용하지 않았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우리가 이 문구에 만족했던 이유도 이 분야에서 그 누구도 사용하지 않던 용어를 우리가 처음 재정의하여 사용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보도된 내용을 보면 연구내용도 유사한데, 우리가 이 분야에서 맨 처음 사용했다고 자부하던 '코이노니아'란 용어까지 동일하다.

 
정보 기술 분야에서 개념과 기술 변화는 어느 분야보다도 빠르다. 새로운 용어와 개념을 사용한다는 것은 새로운 문화적 가치를 만드는 것과 유사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문화적 가치를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과 공유한다는 것도 중요하다.

 
아쉽게도 우리가 학술진흥재단에 제안한 중점연구소 연구제안서는 심사에서 탈락하였다. 그 결과 우리가 이 분야에서 새롭게 재정의하고 사용한 '코이노니아'를 세상에 알릴 수 있는 기회를 잃고 말았다.

 
하지만 <전자신문>에 '코이노니아'란 용어와 개념이 전자부품연구원․산업자원부․정보 기술부의 공동 연구 개발의 이름으로 세상에 알려지게 되는 것을 보고 반가운 기분이 들기 전에 찝찝한 기분이 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새로운 개념을 정의하는 작업을 코이닝(coining)이라 한다. 즉 새로운 개념을 주조하여 찍어낸다고 해석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유비퀴토스(ubiquitous)'라는 용어는 1988년 미국 제록스 팔로알토 연구소의 컴퓨터 사이언스 연구소장으로 있던 마르크 와이서(Mark Weiser)에 의해서 '유비퀴토스 컴퓨팅(ubiquitous computing)'이라는 용어로 처음 정의, 즉 코인(coin)되었다. 그는 이 용어를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컴퓨터가 벽(壁)이나 가구, 의복, 자동차 등 우리 주변의 모든 곳에 내장되어 그 모습을 볼 수는 없지만 이들 내장된 컴퓨터들이 네트워크로 연결, 서로 연동(連動)하면서 인간이 알게 모르게 쾌적(快適)하게 활동하고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지원 해주는 것.'
 
오늘날 우리가 유비퀴토스 시대의 기본 철학과 산물을 향유하는 데는 마르크 와이서의 업적이 컸다. 그리고 이 개념은 정보 기술 분야에서는 위대한 업적 중 하나라고 평가할 수 있다.

 
'코이노니아'란 개념에 기반한 우리의 제안서가 비록 과제로서 탈락을 했더라도 그것은 분명 공적이고 공개적인 활동이었다. 그리고 이 활동을 통해 이 분야에서 '코이노니아'란 개념을 처음 발표하였다. 즉, 우리가 이 용어를 코인(coin)하였다.

 
모든 정보가 공개되지 않은 상황에서 전자신문 기사의 내용을 정확히 검증할 수 없기 때문에 속단할 수는 없으나, 정보 기술 분야에서 '코이노니아'란 용어를 누가 맨 처음 주창했는지는 따져볼 문제다.

 
만에 하나 전문가들의 연구제안서가 과제로서 선정되지 않는다고 해서 그 제안서가 지적 자산 가치가 없다거나 그래서 누구나 맘대로 도용할 수 있는 거라 생각한다면, 이는 우리 사회의 지적 나아가 윤리적 가치관을 파괴하는 심각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유비퀴토스 코이노니아', 즉 '유비퀴토스 대동세상'을 위하여.

본 기사는 2005년 9월 2일 오마이뉴스에 실린 기사입니다.
 
(2006/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