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보수가 판치는 세상한겨레|입력 16.04.12. 19:56 (수정 16.04.12. 19:56)

[한겨레]이야기 담담

경제발전 논리에 빠진 비과학적 도그마가 판 치고 있다. 그 중심에 정권을 장악한 가짜 보수세력이 있다. 총선에서도 정당은 경제회복이라는, 후보들은 지역개발이라는 명분 앞세워, 진보와 보수의 진위를 구분할 수 없게 만들었다.

사물과 현상을 관찰하는 이유는 그 원리와 규칙을 밝히는 데 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관찰하는 대상의 상태와 관계를 인지, 비교 및 판단할 수 있는, 지적 능력이다. 비록 초보적이지만, 여기에는 관찰 대상의 대칭적 상대성을 구분할 수 있는 인간의 기본적인 지적 능력이 반영되어 있다. 또한 이 능력은 순서, 배열 및 조합과 같은 다음 단계의 상위 개념을 구축하는 기반이 된다. 이를 통해 인간은 시공간 내에서 다양한 현상이 발생하고 변화하는 것을 인지하게 되었고, 궁극적으로, 이러한 현상과 변화의 원인과 인과관계를 밝히는 과정에서 인간의 역사는 발전하게 되었다.

이런 관점에서 역사 발전은 과학이다. 그리고 이 발전의 동력은 인간의 기본적인 지적 능력에 있다. 하지만 역으로 인류사에서 역사가 정체되거나 퇴행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이는 특정 목적을 가진 집단이,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이러한 인간의 지적 능력을 말살시킨 결과다. 이는 역사 발전을 부정하는 비과학이다. 그럼 이러한 현상들은 단지 과거의 것이며,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에서는 발생하지 않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역사 발전을 부정하는, 가짜 보수가 판을 치는 세계에선 이런 현상이 예외 없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한국은 경제발전 논리에 빠진 비과학적인 도그마가 판을 치고 있다. 그 중심에는 정권을 장악한 가짜 보수 세력이 있다. 이들은 일본 자본과 기술에 대한 한국 경제의 종속을 정당화하기 위해, 일제의 조선에 대한 경제 수탈을 일본에 의한 조선의 근대화로 왜곡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이들은 민족자본을 강탈하는 것도 부족해서, 한국 경제의 국제화란 이름으로 외국 자본에 금융기관과 국가 기간산업 및 시설을 하나둘 넘기고 있다.

호남도 이런 면에서 결코 예외적이지 않다. 가짜 보수 세력에게 배척의 땅이었던 호남은 동학혁명과 6·10학생운동의 전통을 이어, 5·18민주항쟁과 시민·학생운동의 성지가 되었다. 그런데 여기에서도 경제발전 논리에 빠진 비과학적인 도그마가 판을 치고 있다. 그 중심에는 가짜 보수 세력과 이해를 같이하는 토호세력이 있다. 지역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전남·북 도지사들이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을 지지하였고, 스스로를 진보라고 말하던, 호남의 대표적인 정치인들이, 지역발전이라는 이름으로, 가짜 보수 세력으로 호적을 바꾸었다. 이러한 도그마는 결코 정치와 경제 부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일제에 의한 호남 수탈의 상징이었던 전군가도는 이미 벚꽃축제와 마라톤대회의 현장으로 바뀐 지 오래다. 조선의 모향(母鄕)인 전주에서, 일제에 의해, 전주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헐린 전주성벽의 잔해로 세워진 전동성당은 관광객만 북적거리는 한옥마을의 대표적인 관광 명소가 된 지 오래다. 여기에선 조선왕실의 상징인 경기전(慶基殿) 정면에, 일제의 보호 아래, 전동성당이 성벽의 잔해로 프랑스 신부에 의해 세워졌다는 전주의 굴욕적인 역사는 찾아볼 수 없다.

우리는 현재, 있는 역사를 없애고, 없는 역사를 만드는 것도 부족해서, 있는 역사조차 그 진실을 숨기거나 왜곡하는 반(反)역사적, 반과학적, 반인간적 시대에 살고 있다. 그래서인지, 이번 호남에서의 20대 총선은 선거사상 가장 혼란스러운 선거 중의 하나가 되었다. 각 정당은 경제회복이라는, 각 후보들은 지역개발이라는 명분을 앞세워, 진보와 보수의 진위를 구분할 수 없게 만들었다.

오래전, 성철 스님이 “산은 물이요, 물은 산이다”라고 말한 것은 그 시대의 반과학적, 반역사적, 반인간적 현실을 빗댄 철학적 일갈이었다. 이는 역으로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라는 진리와 진실이 이 후에 필연적으로 따를 수밖에 없다는 과학적, 역사적 철칙을 함의한 변증법적 일갈이다. 우리가 만약 이 일갈을 지금 외면한다면, 이 시대의 노예로 사는 것과 전혀 다를 바가 없다.

이문근 전북대 컴퓨터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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