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신자유주의 정책

글쓴이 이문근 (전북대학교 전자정보공학부)

사전적 의미의 주권은 “국가가 대내외적으로 지니는 절대적이고 독립적인 권력”이며, “국가는 주권에 의해 대내적으로 국민에게 국가의 법률·명령·기타 결정사항 등에 복종할 것을 요구할 수 있고, 대외적으로는 자주성과 독립성을 주장하며 또한 외국으로부터의 간섭을 일체 배제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면 우리나라는 “자주성과 독립성을 주장하며 또한 외국으로부터의 간섭을 일체 배제할 수 있”는 주권 국가인가 라는 질문에 우리는 자신 있게 “그렇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

19세기 “자유주의”라는 명분으로 인류와 세계를 거의 초토화시켰던 제국주의 국가들은 이제 “신자유주의”라는 “새로운” 명분으로 인류와 세계를 다시 초토화시키고 있다. 신자유주의 앞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된 우리나라의 현실. 이를 초래한 원인은 무엇인가를 짚어보고, 그 해결책을 주권 국가적 관점에서 찾아보고자 한다.


1. 97년 한국의 외환위기와 외국계 단기투기자본

최근 KBS 스페셜 ⌜한국경제 제3의 길⌟(2004년 7월 27일~31일)에 의하면 97년 외환위기 이후, 국내 은행의 30%가 외국 자본에 넘어갔다고 방영했다. 이는 OECD 국가 중 80%가 넘는 멕시코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수치라고 했다. 또한 국내 주식시장의 43%가, 특히 블루칩(우량기업)의 경우 약 60%가 외국 자본에 넘어갔다고 했다. 일반적으로 주요 OECD 국가의 내국인 주식 비중이 60~70%, 외국인 보유가 20~30%인 것을 감안한다면, 이는 “금융정책과 경제정책의 자율성을 의미하는 이른바 경제주권”에 심각한 위협이 아닐 수 없다고 진단했다.

또 다른 자료(2004년 6월 14일, ⌜디지털 말⌟, 이정환 기자)에 의하면 97년 외환위기 이후 국내에 들어온 외국 자본의 95%는 단기 투자이익을 노린 투기자본, 즉 헤지펀드(Hedge Fund)라고 보며, 금융권에서의 대표적인 국부유출 사례를 제시 했다. 이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독일 알리안츠 그룹, 하나은행에 1263억원 투자, 약 3000억원 이익 회수.

2) 미국 칼라일 그룹, 한미은행에 4900억원 투자, 6200억원 이익 회수.

3) 미국 골드만삭스, 국민은행에 투자, 원금의 두 배가 넘는 9200억원 이익 회수.

4) 미국 론스타, 외환은행 인수, 8000억원 이익 회수.

5) 미국 뉴브리지캐피털, 국민은행 5000억원에 인수, 정부로부터 18조 원 공적자금 투입, 투자이익 1조원 이상 전망.

천문학적인 액수가 아닐 수 없다.

이외에도 국내 굴지의 증권회사 및 대기업에 대한 고배당/유상감자에 따른 헤지펀드의 대표적인 폐해 사례들을 제시했다. 이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브릿지증권 (BIH): 총자본 4478억원, 3668억원으로 감소 (810억원 회수), 앞으로 1200억원 추가 회수 예정.

2) 만도 (JP모건): 2003년 12월, 514억원 회수 (투자비용의 두배).

3) OB맥주 (인터브루): 2004년 3월, 1600억원 회수 (총자본금의 60% 이상).

4) 서울증권 (퀀텀인터내셔녈): 267억원 회수 (액면가 대비 60% 배당).

5) 메리츠 증권: 배당금 235억원 (2003년 당기순이익 113억원, 수입의 두 배 이상 배당)

자료는 이러한 사례들이 발생된 전형적인 절차를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1) 헐값 매입.

2) 대규모 배당.

3) 자사주 매입과 소각.

4) 유상감자.

5) 자산 매각과 고임대 세입.

6) 무상증자로 늘린 자본금 유상감자로 챙기기.

7) 상장폐지와 매각/청산.


이를 예를 들어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1) 한 주주회사가 97년 이후 외환위기 때문에 심각한 자금난에 빠져 있다. 주식이 폭락한다. 주당 10만원 하던 주식이 5만원으로 떨어진다. 총 100만주의 회사 총주식가는 1000억원에서 500억원으로 떨어진다. 외국 투기자본이 250억원을 투자해 주식 50% 이상, 즉 50만주 이상을 확보한다. 2) 경기가 조금씩 회복된다. 회사가 적자에서 흑자로 전환하고 이윤이 증대한다. 주가가 오른다. 주당 8만원을 회복한다. 주주총회에서 주당 5만원의 배당을 결정한다. 투기자본은 50만주에 대한 배당금으로 250억원의 이익을 회수한다. 이미 원금을 회수한다. 3) 주주총회의를 통해 회사는 회사 자금으로 나머지 주식의 30%를 매입한다. 그리고 이를 소각한다. 결과, 주가가 8만원에서 10만원으로 상승한다. 총 주식은 70만 주이며, 이중 50만주가 투기자본의 주식이다. 이제 투기자본의 주식은 50%에서 약 71.43%로 급상승한다. 4) 주주총회를 통해 회사는 경영상의 이유로 회사의 총자산을 줄이기로 정하고 투기자본 주식의 71.43% 중에서 21%에 해당하는 52500주를 유상감자하기로 결정한다. 주당 액면가인 10만원과 배당금 5만원을 기준으로 투기자본 자신의 71.43% 중에서 약 21%, 즉 52500주를 유상감자한다. 투기자본은 78억7500만 원의 이익을 회수한다. 이때부터 투자에 대한 순이익이 발생한다. 이제 회사의 총주식은 64만2500주, 액면가 642억5000만원이다. 5) 투기자본은 아직도 50% 이상의 주식을 가진 대주주이다. 회사가 흑자 상태인데도 자산 중 약 500억에 해당하는 부동산을 매각하여 무상증자를 통해 자금화 한다. 이렇게 늘린 500억과 회사 이익에 대한 유상감자를 결정한다. 주식가(10만원)와 배당금(10만원)을 합해 나머지 30%, 즉 약 19만2750주에 대한 유상감자를 결정한다. 투기자본은 약 385억5000만원의 이익을 회수한다. 투기자본은 250억원 투자해, 이미 원금을 회수하고 약 464억2500만원의 순이익을 얻었다. 그러나 아직 계산은 끝나지 않았다. 7) 이 결과, 회사는 이미 빈껍데기만 남았다. 장에서의 회사 주식 거래는 이미 자회사 주식의 1%를 넘지 못한다. 법적으로 상장이 폐지된다. 상장이 폐지되면 회사의 투명성은 의무사항이 아니다. 투기자본은 나머지 자산가치에 대한 매각을 통해 회사를 청산한다. 그 과정과 결과는 누구도 알 수 없다. 투기자본은 회사의 나머지 자산을 약 285억7500만원(97년 기준 총회사 자산 1000억에 대한 총회수 자금 제외 자산)이라 산정하고, 대략 200억에 매각한다. 이로써 투기자본은 250억을 투자해, 원금을 회수하고 약 664억2500만원의 단기이익을 챙긴다. 이는 거의 265.7%의 이익률이다. 현 은행 대출 금리를 대략 8%로 잡는다 해도 약 33년 이상이 걸리는 이익을 단 1~3년 만에 얻으니 외국계 투기자본에게는 대단한 기회가 아닐 수 없다.


2. 세계화와 단기 투기자본

헤지펀드는 “개인모집 투자신탁”이며, “100명 미만의 투자가들로부터 자금을 유치하여 파트너쉽(공동체)을 결성한 다음, 관광지로 유명한 중남미 카리브해의 버뮤다와 같은 조세도피(租稅逃避) 지역에서 다국적 기업들이 위장된 자회사(子會社)를 설립, 파생(派生)금융상품을 교묘히 조합하여 도박성이 큰 신종 상품을 개발 운영하는 기금”을 의미한다.

위의 문맥에서, “조세도피 지역”이란 법인세, 개인소득 등과 같은 원천과세가 전혀 없거나 저율로 과세되는 세제상 우대 조치와 외국환 관리법/회사법 등의 규제가 완화되어 경영상 장애요인이 없는 지역을 의미한다.

또 이 문맥에서, 파생금융상품이란 “채권·외환·주식 등 기초 금융자산으로부터 파생된 상품으로, 금융상품의 장래 가격변동을 예상하여 ‘금융상품의 가격 변동’을 상품화한 것”이라고 한다. 대표적인 경우가 선물·선물환·옵션·스와프 등이며, 이들을 대상으로 한 선물옵션·스와프선물·스와프옵션 등과 같은 2차 파생상품 이외에도 약 1200종이 있다고 한다. 그리고 그 규모가 약 12조 달러, 원으로 환산하면 대략 1경3788조원(1149원/1달러, 2004년 9월 24일 기준)이라고 하니, 이는 2005년을 기준한 우리나라 총예산의 약 69배에 달하는 대단한 규모이다.

이를 우리나라의 97년 외환위기와 같은 경우를 들어 한번 해석해 보자. 헤지펀드는 우선 한국의 정치경제 상황을 면밀히 파악하면서 외환위기와 같은 상황이 발생할 수 있는 정치경제적 상황을 유도한다. 특히 초기 한국의 자본이 일제의 매판자본으로부터 해방 후 미군정 통치와 경제원조 및 6․25 등을 거치면서 대미 일변도의 경제구조를 가졌다는 점, 이후 관료자본주의적 경제정책에 의해 외국자본에 의한 경제성장이 유도되었다는 점, 그 결과 한국경제가 자생적 민족경제에 기반을 둔 산업보다는 외국자본의 이익에 부합하는 개발/생산/판매 측면에서의 이식성이 강하여 대외 의존도가 높은, 즉 수입원자와 수출상품 의존도가 높은 산업 정책이 중점이 되었다는 점, 그리고 산업화 과정에서 정치적 비호하에 자본이 관료적으로 독점화될 수 있었던 정경유착의 고리가 강하다는 점 등을 감안한다면, 부패한 권력과 탐욕스러운 재벌/기업들에게 헤지펀드의 작업(?)은 그리 어렵지는 않을 것이다. 김영삼 정부 시절인 97년 한국에 외환위기가 발생한다. 이 과정은 헤지펀드의 작업과 맞물린다. 우선 이들은 종합금융회사 등을 통해 재벌들에게 단기 외자를 제공하여 과잉투자 및 투기(부동산과 증권)를 유도한다. 과잉투자와 투기에 의한 경영상의 문제가 중견 재벌 기업들에서 발생하고, 이는 곧 외자에 대한 채무 불이행 상황으로 이어진다. 동시에 동남아시아의 통화위기가 발생한다. 선거를 앞두고 김영삼 정부의 지도력이 떨어지고 적절한 대책을 강구하지 못하는 사이, 국제신임도는 급속히 떨어지고 외자가 급격히 빠져 나간다. 보유외화는 바닥난다. 대외채무에 대한 지불능력이 없다. 김영삼 정부는 IMF에 긴급 지원을 요청 한다. IMF는 지원을 담보로 한국정부의 정책적 구조조정을 요구한다. 이 구조조정에는 정부 예산 삭감, 자본 시장 자유화, 외환 시장 개방, 관세 인하, 국가 기간 상업 민영화, 외국 자본에 의한 국내 우량 기업 합병 및 매수 허용, 정부 규제 축소, 재산권 보호 등이 포함된다. 이제 헤지펀드의 투기를 방해할 어느 조치도 남아있지 않다. 그리고 모든 것이 이들이 계획한 대로, 예상한 대로 이루어졌다. 그러니 당연 파생상품성도 또한 높다. 이제 한국은 헤지펀드를 위한 천국이 되었다. 모든 것이 일련의 완벽한 결과이다.

1998년 초, 세계 헤지 펀드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퀀텀그룹의 조지 소로스가 한국을 방문했다. 그는 어떤 생각으로 한국을 방문했을까? 당시 TV에서 상기된 채 만면에 웃음을 감추지 못하던 그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가시지 않는다. 그는 너무도 당연히 당시 김대중 당선자를 통해 국제 금융자본의 국내 금융산업 진출을 이끌어 내었다. 우리에게는 단 하나의 선택이었지만, 그에게는 각본상 짜여진 과정 중의 하나였을지도 모른다.

3. 워싱턴 컨센서스와 미국식 자본주의의 세계화

미국의 80년~90년대 자본주의를 대주주의 이익을 최우선시 하는 “주주자본주의”와 단기 실적에 의해 기업을 경영하는 “단기주의”로 정의하고 있다. 주주자본주의는 80년대의 방만한 경영 부실에 빠진 미국기업의 투명성을 높이고 주주의 이익을 위해 월가에서 창안한 것이다. 그러나 이 기간동안 미국 주식의 대부분을 차지한 2~5%의 인구만이 미국 정책변화의 혜택을 보았을 뿐 대부분의 미국 노동자의 실질임금에는 커다란 혜택을 미치지 않았다. 즉 빈부격차의 심화와 중산층의 몰락을 가져왔다. 이런 과정에서 “초단기, 고수익”을 추구하는 미국의 단기 투기자본의 성장을 가져왔으며, 미국의 90년대, 특히 클린턴 정부의 대내외 정책을 통한 경제성장은 실질 성장보다 이러한 단기 투기자본의 성장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럼 이 배경에는 어떤 경제적 원리와 정책이 없는 것일까?

1989년 미국의 정치경제학자인 존 윌리엄슨은 외환/외채 위기의 위험에 놓인 남미의 경제개혁 정도를 평가할 수 있는 기준을 “워싱턴 컨센서스”(Washington Consensus)라는 이름으로 제안했다. 이 컨센서스는 남미국가들도 OECD나 동아시아 국가들처럼 물가 불안을 잡고, 시장의 힘을 중시하며, 무역과 해외 직접 투자를 위해 시장을 개방해야 한다는 것으로 남미국가들이 추구해야 할 정책 의제에 활용되었다. 이 의제는 시장기능 활성화, 경쟁 여건 확대, 국가 기능 축소로 요약할 수 있다. 이후 1990년대 초, 클린턴 정부가 들어서면서 IMF, 세계은행, 미국 내 정치경제학자들, 행정부 관료들의 논의를 거쳐 미국 시장경제체제의 대외확산 전략으로써 “워싱턴 컨센서스”가 정립되었다. 이 컨센서스에 의한 구조조정은 정부 예산 삭감, 자본 시장 자유화, 외환 시장 개방, 관세 인하, 국가 기간 상업 민영화, 외국 자본에 의한 국내 우량 기업 합병 및 매수 허용, 정부 규제 축소, 재산권 보호 등을 포함하고 있다.

실제 워싱턴 컨센서스는 미국 투기자본을 위한 미국의 남미 정책의 결정체라고 볼 수 있다. 그럼 이 배후에는 어떤 의도가 깔려 있을까?

워싱턴 컨센서스에는 미국의 주기적인 달러의 정책이 반영되어 있다. 그 동안 미국은 강한 달러 정책을 추구해 왔다. 달러가 강하면 무역적자라는 부작용은 있지만, 미국으로 막대한 자금이 유입된다. 당연히 이 자금은 헤지펀드에 투자 되며, 무역 적자는 교역국에 대한 시장개방과 규제완화를 강요하게 된다. 그 결과 헤지펀드에 의한 교역국 민족경제의 파탄과 정치경제적 구조조정이 강제적으로 발생되며, 나아가 교역국은 워싱턴 컨센서스에 의한 미국식 시장경제체제가 완성된다. 그리고 그 시장경제는 어떠한 희생을 감수하더라도 미국식 주주자본주의인 대주주의 “초단기, 고수익”이라는 최대이익을 보장하게 된다.

문제는 워싱턴 컨센서스 정책이 단순히 남미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힘의 논리가 적용되는 한 미국은 세계 어떠한 곳에서도 이 정책을 적용하고자 한다. 한국 역시 예외가 아니다.

4. 신자유주의의 세계화

워싱턴 컨센서스의 배경에는 신자유주의 논리가 강하게 깔려있다. 여기에서 “자유”는 “인간이 어느 무엇에도 구속되지 않고 자기의 행복과 안정을 확보하기 위해 자유로이 판단하고 행동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인간존중사상과 민주주의적 의미의 자유는 물론 아니다. 여기에서의 자유는 “미국 자본”의 경제적 자유를 의미한다.

80~90년대를 거치면서 미국의 자본, 즉 주주자본은 자국에서 더 이상 “초단기, 고이익”을 보장할 수 있는 투자 대상이 찾기 힘들어졌으며, 또한 겉잡을 수 없을 정도로 비대해져, 국내에서는 더 이상의 새로운 이익을 창출할 방법이 없게 되었다. 결국 미국 자본은 자국의 정치/경제/군사적인 힘을 동원해 전세계, 특히 제3세계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여기에는 워싱턴 컨센서스 정책을 관철하기 위한 국제통화기금(IMF: International Monetary Fund), 국제부흥개발은행 (IBRD: International Bank for Reconstruction and Development), 국제무역기구 (WTO: World Trade Organization)이 있다. 워싱턴 컨센서스 정책적 측면에서의 이 조직들의 역할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IMF는 환시세 안정, 환의 자유화, 융자 등의 목적으로 1945년에 설립된 국제협력기관이다. 국제부흥개발은행(세계은행)이 장기 금융기관이라면 IMF는 단기 국제금융기관이다. 그러나 초기의 환율관리시스템에서 금융위기 관리시스템으로 확장되어, 구제금융의 대가로 구조조정, 민영화, 시장개방 등 신자유주의 정책을 강요한다.

2) IBRD는 전쟁으로 파괴된 경제의 부흥과 저개발지역의 개발원조를 주목적으로 하는, IMF와 더불어 설립된 국제 융자기관이다. 일명 세계은행(World Bank)이라고도 한다. IBRD는 국제적인 장기 투자기관으로 국제 민간자본의 보다 원활한 이동과 국제투자를 합리적으로 촉진 하고자 한다. 그러나 변혁예방 전략으로서의 제3세계의 빈곤구제와 개발차관 공여의 대가로 신자유주의 정책을 강요한다.

3) WTO는 관세무역일반협정(GATT: General Agreement on Tariffs and Trade)의 최종협상인 8차 다국간 무역협상(우루과이 라운드로 알려져 있음)을 기반으로 발족된 세계무역기구이다. 초기 공산품 위주의 자유무역을 위한 관세협약에서 농업, 서비스, 투자 등 전면적 자유화와 개방을 위한 세계경제체제 구축을 위한 의사결정 기구로 변신, UN보다 막강한 권한을 보유하고 있다.

1991년 소련의 붕괴 이후 미국과 소련의 냉전체제가 무너지면서 팍스 아메리카 시대를 예언하였듯 미국은 IMF, IBRD, WTO의 비호 아래 정치/경제/군사력을 앞세워 미국식의 세계적인 시장경제체제를 전 세계에 확산시키고 있다. 이를 “신자유주의의 세계화”라고 정의한다. 이 세계화의 주체는 미국의 자본, 나아가 미국 자본을 중심으로 한 세계 초국적 자본이며, 이들이 추구하는 신자유주의 노선은 자유화, 시장개방, 규제완화, 구조조정, 민영화/사유화, 노동유연화 등을 들 수 있다.

워싱턴 컨센서스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세계화가 이루어진 대표적인 남미국가로는 멕시코를 들 수 있다. 멕시코는 1992년 10월 미국, 캐나다와 함께 북미 자유무역협정, 즉 NA-FTA(North America Free Trade Agreement)를 체결하였고, 1994년 3월, OECD에 가입했다. 이후 페소화에 대한 평가절하와 변동환율제 실시로 인해 외국인투자가들이 자산을 인출하면서, 1994년 12월부터 페소화 가치가 하락하기 시작하여, 1995년 초 1/3 수준까지 떨어져, 결국 외환위기를 맞게 되었다. 1995년 당시 대외채무총액은 1611억 달러였다. 멕시코 정부는 세계 제5위의 석유매장량(86년, 확인매장량 493억 배럴)을 자랑하는 석유 등의 국유 자원을 담보로 IMF에 구제금융지원을 요청하고, IMF의 권고에 따라 환율을 완전자유화하고 부가세를 50%나 인상했으며 엄격한 긴축정책 속에 국영기업들의 민영화 및 은행부실의 과감한 제거정책을 폈다. 결과 국내 제1,제2 은행들을 포함한 멕시코 은행의 80%가 외국자본, 특히 미국자본에 넘어갔다. 18개였던 은행은 한해동안 8개로 통합되었고, 은행 직원도 16만 명에서 10만 명으로 줄어들었다. 은행의 영업형태도 산업적 공공성을 기반으로 한 기업금융보다는 안전한 대기업과 개인 대출을 기반으로 한 소매금융에 치우치고 있다. 결과 중소기업들의 자금난은 심각한 상태에 빠지고, 실업률은 급등하고, 빈부격차는 심해졌다. 이런 일련의 과정은 2년 뒤 한국이 겪게 되는 외환위기와 그 유형이 너무도 흡사하다.

미국의 신자유주의 정책은 멕시코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미국의 신자유주의 정책은 멕시코에 이어 칠레, 콜롬비아, 코스타리카, 베네주엘라, 브라질, 아르헨티나 등 모든 남미국가들을 포식해 갔다.

포식은 남미에서 그치지 않았다. 미국의 신자유주의 정책은 남미를 넘어 아시아로 향했으며, 97년 동남아시아의 외채위기에 이어, 한국의 외환위기가 발생했다.

다음 호에서는 한국에서 신자유주의 폐해가 얼마나 심각한지, 그리고 그 원인은 무엇인지 살펴보고자 한다.
 
(2004/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