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오는 까닭

 

 

퇴색한 아지랑이의 모습들만 남은

사월 초순 오후의 나른함은

연두색 햇살과 물결의 파편을 꿈꾸고 있다

아이들의 웃음소리에 밀려 골목은 살아나는데

수줍은 새싹의 그늘 아래

그리운 이의 이름을 불러본다

해를 거듭할수록 깊어지는

되새김을 반복하는 아픔은

결코 여기까지 데리고 올 게 아니었다

증오의 칼날이 가슴을 도려내던 시간들

울분의 질타가 뇌리를 분쇄하던 시절들

웃자란 생각 버리듯

가진 것을 다 버리는 저 하늘 닮았어야 하는데

살아있는 한 순간의 공백을 채우기 위해

바람은 내 숨결을 여는 녹색 신호등

봄은 눈물 없는 자의 영혼을 위해서

눈을 뜨고 채색을 하며 이 세상으로 밀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