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시>

 

 

손톱을 깎는다, 글을 쓰기 전

자판字板 앞에서 벌이는 나만의 의식儀式이다

 

예전에 누군가는 연필을 깍았으리라

 

세수를 한다, 시를 쓰기 전

라는 거울을 바라보는 나만의 의식이다

 

예전에 누군가는 먹을 갈았으리라

 

요즘은 세상이 탁하게만 보인다

하루에 세수를 수십번 해도 시가 보이지 않는다

 

앞으로 어떤 시를 만날지 몰라, 지난 시들을 정리했다

 

누구나 시인이 될 수 있다면,

그 마음으로 썼던

몇 편의 메타-시를 꾸리고, 해독解讀을 했다

 

혹자, 말하리라: 이것이 시냐고

나는, 말하리라: 세상에, ‘시 아닌 것이 무어냐

 

기도한다, 서시序詩를 마치면서

탈고 후, 마지막 치루는 나만의 의식儀式이다

 

그리고,

삶에 번민하는 모든 이들에게

이 시들을 바친다

 

 

2013년 늦가을

건지산 연구실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