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령도 사곳바위

 

 

십억년전 나는 대지에 모래처럼 쌓인 규사토였어

대륙의 이동과 대지의 변화에 따라 나는 깊은 땅 속으로 들어가게 되었지

그리고 수억년동안 멘틀에 깔려 압축과 변형의 과정을 거쳐

아주 단단한 규암이 되었고

수 억년전 다시 대륙의 이동과 대지의 변화에 따라

나는 다시 대지에 나오게 되었어

이 과정에서 많은 융기와 절단과 굴곡의 과정을 거쳐

나는 우뚝선 바위로 바다 한가운데 서게 되었던 거야

내가 다시 만난 대기는 이전의 대기가 아니었어

내가 다시 만난 바다 또한 이전의 바다가 아니었어

파랗게 높아진 새로운 하늘은 내가 그 동안 겪었던 과정을 이해하는 것만 같았어

푸르게 깊어진 새로운 바다 또한 내가 그 동안 겪었던 과정을 이해하는 것만 같았어

하지만 하늘과 바다는 이후 나처럼 다시 많은 변화를 겪게 되었어

수천만, 수십만년의 빙하기를 거치면서

대기가 차가워지면 바닷물이 줄어드는 것을,

대기가 뜨거워지면 다시 차오르는 것을,

수백, 수천번은 보았을 거야

그러는 동안 나는 바다 한가운데서 거대한 파도를 온 몸으로 맞섰던 거야

그러는 동안 내 몸은 조금씩 부서져 모래알이 되었고

나는 조금씩 나의 형체를 잃어가기 시작했어

하지만 다행인 것은 부서지고 깨어진 내 죽음의 분신들이

규사토 모래가 되어 그 거친 파도로부터 나를 보호하게 되었던거야

그리고 긴 시간이 흐르게 되었어

그런데 언제부턴가 인간이 나타나고 건물이 들어서고 비행기가 날면서

나를 보호하던 그 모래들이 점점 사라지거나 물속으로 잠기기 시작했어

나는 인간들에 의해 남획되고

규사토 모래라는 보호막을 조금씩 잃기 시작했던 거지

그리고 나는 다시 거친 파도를 맞이해야 하는 운명에 처하게 되었던거야

하지만 그 순간 나는 대지의 큰 변화를 감지했어

대지는 자신의 큰 변화를 다시 서서히 시작하는 것 같았어

내가 다시 땅 속으로 들어가야 하는 시기를 준비하고 있었나봐

즉 내가 규암에서 다시 규사토가 되어지고

다시 땅속으로 들어가서 수억년 동안 규암으로 뜨겁게 구어져

다시 대지로 나올 수 있는 그 기나긴 과정을 시작하려나봐

그런데 다행인 것은 인간이 그 과정의 첫단계,

즉 규사토로 변하는 과정을 촉진시키는 역할을 하나봐

인간의 역할이 내 윤회의 매개체라면

나도 그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 존재라는 생각이 들어

나는 그들에게 어떤 존재일까

서로가 서로를 돕는 존재라면, 이것은 선순환적 윤회가 아닐까

그런데 인간의 윤회는 너무 짧아서 내 윤회를 이해 못할지도 몰라

아마도 내 윤회 과정이 너무 길어서

인간들은 내가 윤회를 거치는 하나의 생명체임을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어

그렇게 되면 우리의 선순환적 윤회는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내가 땅 속으로 들어가 다시 나오게 될 때쯤

인간들이 자신들의 윤회의 굴레에서 벗어나 있기를 나는 바래

나는 어차피 몇 번의 윤회밖에 남아 있질 않거든

내 입장에서 보면 지구의 삶도 그리 많이 남아 있지 않고

우리는 지구의 죽음과 함께 다시 새로운 물질로 태어날 거니까